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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김홍도의 풍속도

 

 

 

단원 초상 /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가 활동하던 영조, 정조 때에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다.

 

18세기에 활약했던 대표적 선배 화가로서 겸재 정선(1676~1759)이 있지만, 그가 주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에 치중하여 일가(一家)를 이룬 데 비해, 김홍도는 당시 회화의 삼대 조류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풍속화와 남종화南宗畵는 물론이고 도석인물(道釋人物), 고사인물(古事人物), 영모화조(翎毛花鳥), 사군자(四君子), 초상화, 기록화 등 각 부문을 비롯해, 심지어는 불화(佛畵), 판화에 이르는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두루 명작을 남기고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정조의 절대적인 후원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과장 없이 그려내면서도 그 멋과 흥, 해악을 이끌어낸 풍속화는 ‘김홍도 화풍’을 확립하고, 자신의 화풍을 한 시대의 양식으로까지 확산시킴으로써 동시대와 후대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단원 김홍도는 조선초기의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 c.1400-1470년경), 후기의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말기의 오원(五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과 함께 조선시대의 4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천재였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 책가도(冊袈圖) 등 아주 다양하지만 이 글에서는 인물화 중의 한 분야인 풍속화를 살펴보자.

 

 

1. 김홍도 풍속화의 시대적 배경 및 의의


김홍도의 풍속화는 조선 후기 상업 발달과 서민층의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김홍도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다양한 계층의 생업과 생활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당대 사람들의 생활 감정과 한국적인 정취를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하여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2. 주요 특징


김홍도 풍속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배경 생략과 인물 중심의 구성이다. 


배경의 과감한 생략: 그림의 주제가 되는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배경을 최소화했다. 이는 보는 이의 시선을 인물에 고정시켜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준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 거칠면서도 힘찬 붓질(선)을 사용하여 인물의 동적인 자세와 표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인물들의 옷 주름 하나하나에도 바람이 스치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해학성과 따뜻한 시선: 그림 속 인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상황 설정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낙천적이고 재치 있는 해학미가 잘 드러난다. 양반과 상민이 어울리는 모습 등은 당시 변화하던 신분 질서를 반영하기도 한다.


원형 구도: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에서는 종종 인물들을 둥글게 배치하여 화면의 중심(핵심 사건)으로 시선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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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풍속화 분류

 

출처: 진준현(서울대박물관 학예관) 

 

①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것

② 양반 사대부들의 생활상을 그린 것

③ 국가나 궁중의 행사를 그린 기록화

 

 

(1)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김홍도의 풍속화 중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친근하면서도 재미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김홍도의 이런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실감나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졌다. 또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였음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오늘날까지 모두 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작품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의 의식주(衣食住)및 산업과 오락 등 각종 생활상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다음부터는 이런 김홍도의 서민풍속화를 주제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의(衣)생활과 관련된 작품으로는 면화 따기, 실잣기, 베짜기(길쌈), 빨래하기, 바느질하기 등이 작품으로 전해져 온다. 이중 <실잣기>와 <베짜기>는 김홍도의 작품 중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의 <풍속화첩>에 포함되어 있다.

 

식(食)생활과 관련된 것으로는 봄 경작, 나물 캐기, 논갈이, 모내기와 새참, 점심, 타작, 주막, 고기 잡기, 해물장수, 술장수 할머니, 우물가 등의 소재가 그려졌다.

 

주거(住居) 생활을 그린 것은 비교적 적은 편으로 국립박물관 소장 <풍속화첩>중에 <기와이기>가 있다. 또 앞서 <실잣기>에 보이던 자리 짜는 모습도 주거 생활과 관련이 되며, <주막집>이나 기타 풍속화의 배경으로 농가가 조그마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위에서는 서민생활의 모습들을 의식주로 나누어 살펴보았지만, 김홍도는 이런 세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생활의 모습들도 표현하였다. 이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 놀이의 모습을 표현한 것들도 상당수가 있다.

그런데 오락이나 취미, 놀이 따위는 역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양반들이 더 다양하게 즐긴 듯 하다. 서민들의 놀이로는 <씨름>, <춤추는 소년>, 목동들이 수양버들 나무 그늘에서 공기 돌로 벌이는 <고누놀이> 등 비교적 소박한 것들이다.
이에 비해 양반들의 오락으로는 <그림보기>, <매사냥>, 각종 <연회>등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이 보인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특히 여행하는 모습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에는 금강산 등 각지의 명승지 유람이 유행했던 시절이었다. 또 상업경제가 발달하고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객주와 여각, 즉 요새 말로 하면 각종 여관과 운송업이 발달했던 때였다.

따라서 김홍도의 풍속화에 여러 가지 목적으로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많은 것도 이해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설 때 생기는 갖가지 흥미로운 정경들이 김홍도와 같은 예리한 눈을 가진 화가의 흥미를 자극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서민 생활에 대한 따스한 정감이 나타나 있고, 때로는 풍자와 유모어도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오늘날까지 우리의 공감을 얻는 것은 작가의 이런 태도, 즉 서민과의 일체감,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김홍도 자신이 서민들 속에서 자라났고, 따라서 그들의 생활이 바로 자기 자신의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김홍도는 나중에 그림으로 출세하여 사또까지 되었지만, 이런 인간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여행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노중상봉(路中相逢)>과 <나루터>, 그리고 <도선(渡船)> 등이다.

<노중상봉>은 소등에 부인과 아기를 태우고 먼길을 가는 서민과 나귀를 타고 가는 양반이 길에서 마주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인은 장옷을 뒤집어쓰고 외간 남자의 시선을 피하려 하는데, 나귀 탄 양반은 짐짓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채 하면서 부인네를 훔쳐보고 있다.

또 <도선>에는 갓 쓴 양반, 나뭇단을 실은 소나 말, 아이 업은 아낙네 등 각종 사람들을 가득 싣고 강을 건너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모습은 20세기에 들어서도 전국 여러 곳의 나루터에서 상당 기간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도로와 다리가 많이 만들어져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밖에도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는 유명한 <서당>에서처럼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신행>에서는 결혼 풍습이 담겨있기도 하다. 또 <담배썰기>, <활쏘기>,<대장간>,<점치기>등 당시 사람들의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을 사실적이고 친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2)양반 사대부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김홍도가 양반 사대부들의 풍속을 그린 것으로는 평생도(平生圖), 기로회도(耆老會道), 계회도(契會圖), 아집도(雅集圖), 유연도(遊宴圖) 등이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생도이다.

평생도란 일생도(一生圖)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어떤 개인의 일평생 중 중요한 사건들을 6폭 내지 12폭의 병풍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평생도는 김홍도에 의해 최초로 그려졌는데, 현재 전하는 그의 작품으로는 모두 3점이 있다.

김홍도의 평생도 중 1781년, 37세 때 그린 <모당평생도8폭병풍>을 예로 들면서 평생도의 내용과 모습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모당(慕堂)이란 선조 때의 문신 홍이상(홍이상, 1549-1615)의 호(호)인데, 아마도 홍이상의 집안 후손이 선조의 일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홍도의 다른 평생도에 비해 화면 구성이 단순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되어 있어, 나중에 많은 무명의 화가들이 평생도를 그릴 때 이 작품을 모범답안처럼 모방하였다. 

 

<모당평생도>의 전체를 볼 때 제1폭 돌잔치, 제2폭 혼인식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겪게 되는 통과의례이지만, 제3폭 삼일유가에서부터 제7폭 좌의정시까지는 과거에 급제하여 순조로운 관력(官歷)을 거쳐가는 지극히 선택받은 사람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 또한 마지막 제8폭을 회혼식으로 마무리 한 것은 복록수(福祿壽)를 아울러 갖추고자 하는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평생도 이외에도 김홍도가 양반 사대부들의 풍속을 그린 작품이 상당수가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성행하던 사대부들의 친목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나 아집도(雅集油然圖), 바둑 두기나 투호(投壺)놀이, 매사냥, 집안이나 야외에서의 놀이를 그린 각종 유연도(遊宴圖) 등이 전한다.

이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후원유연도(後苑遊宴圖)>는 비록 낙관은 없으나 김홍도의 작품이 분명한데, 여기에는 당시 상류층의 여유있는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어떤 부유한 양반의 후원에서 열린 음악 감상회의 한 장면인데, 거문고 반주에 맞추어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담뱃대를 물고 노래를 감상하고 있고, 아래쪽에는 하녀들이 음식상을 분주히 나르고 있다.

동일한 장면이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소장된 김홍도의 풍속도8폭 병풍 중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인물이나 나무, 담장 등이 더욱 세밀하고 정확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김홍도의 화가로서의 실력을 유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3)국가나 궁중의 행사를 그린 기록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 유교 문화권에서는 올바른 역사의식과 공정한 사실기록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관념이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 지역 특유의 유교적 권선징악의 감계적 의도와도 깊이 관련된 것이며, 또한 정의의 판단을 추상적인 하느님에게 맡기기보다는 도덕적인 인간의 의지에 맡기려는 현실주의적 성격과도 관련된다고 하겠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는 “글로써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생각에서 소위 기록화도 함께 그려졌다.

조선시대의 기록화 중에는 특히 의궤도(儀軌圖)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의궤란 어떤 국가적 행사의 전말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후일 참조케 하고자 하는 것인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이나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는 왕실의 혼례나 상장례(喪葬禮), 세자나 세자빈의 임명(冊封), 중요한 건물의 준공이나 수리, 임금의 초상화 제작과 봉안 등에 대한 많은 의궤가 보관되어 있다.

이런 의궤 속에는 반차도(班次圖)라고 하여, 그 행사 중 중요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도 함께 실려있다. 따라서 의궤 반차도는 도서 속에 포함된 일종의 삽도라고 할 수 있는데, 화원이 밑그림을 그리고 목판화로 제작하게 된다.

김홍도가 그린 의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인데, 이것은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수원 화성(華城)에서 개최한 행사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행사 장면이 목판화로 인쇄되어 있는데, 김홍도가 중심이 되고 여러 화가들이 참여하여 만든 것이다.

이 정리의궤에 실린 삽도 중에서 <주교도(舟橋圖)>를 보면, 조선시대 그림에서는 보기 드문 투시도법과 원근법을 이용하여 한강에 설치된 배다리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배다리는 정조가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러 갈 때 가설되던 임시 교량으로써, 현재의 노량진 근처 한강에 설치되었다.

한편 정리의궤 안에는 <주교도>이외에도 정조와 혜경궁 홍씨가 수원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마치고 다시 시흥을 거쳐 한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장면을 판화로 싣고 있다. 이 [원행을묘정리의퀘]는 수원성 축조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와 함께 조선시대의궤 중 가장 뛰어난 것이다.

이들 의궤도들은 단순히 국가 행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사회 풍속을 보여주는 풍속화로서의 의의도 큰 것이다. 참고로 {화성성역의궤}의 판화는 김홍도의 영향을 크게 받은 엄치욱(嚴致郁, 18세기말-19세기초)이라는 화가가 밑그림을 그렸다.


국가적 행사를 기록한 것으로 의궤도 이외에 계병(契屛)이 있다. 계병은 어떤 국가적 행사에 참여한 관원들끼리 계를 조직하여 그 행사의 중요 장면을 그린 그림과 그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병풍에 함께 실어 궁중이나 관청에 보관하는 한편, 개인들도 기념으로 나누어 갖게 된다.

이런 계병은 상당수가 남아 있는데, 김홍도가 그린 가장 유명한 것이 흔히 말하는 <수원능행도병풍(水原陵行圖屛風)>이다.

‘수원능행’이란 정조가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陵)을 참배하러 간 것을 뜻하는데, 정조가 수원에 능행한 것은 여러 차례지만 이 병풍에 그려진 것은 을묘년 원행(園行) 행차이다.

을묘년 원행이란 앞에서 살펴본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내용이 되는 행사로서, 1795년 정조는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잔치를 동갑인 돌아가신 부친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수원 화성(華城)에서 거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 병풍의 원래 정식 이름은 <원행을묘정리소계병(園行乙卯整理所契屛)>으로서, 을묘년 원행을 총괄하던 임시 관청인 정리소에서 만든 계병이라는 뜻이다. 이 계병은 다음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1.<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수원성 행궁의 봉수당에서 열린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장면
2.<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경축행사의 일환으로 수원 인근의 노인들을 낙남헌에 불러 양로연을 베풀어주는 모습
3.<알성도(謁聖圖)>: 수원성의 공자묘를 참배함
4.<방방도(放榜圖)>: 경축행사의 일환으로 임시 과거를 열고 합격자를 발표함
5.<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燥圖)>: 서장대에서 야간 군사훈련식을 참관함
6.<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謝圖)>: 득중정에서 임금이 활을 쏘는 장면
7.<시흥환어행열도(始興還御行列圖)>: 모든 행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귀환하는 중 시흥 행궁에서 쉬는 모습
8.<주교도(舟橋圖)>: 노량진에서 배다리를 건너 한강 북쪽 궁궐로 가는 모습

이 정리소계병도 김홍도의 주도 아래 여러 화원들이 참여하여 그려졌는데, 현재에도 국립중앙박물과, 호암미술관, 창덕궁 등에 여러 벌이 전하고 있다.

이 병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사실적 건물이나 산수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어, 당시의 성대했던 행사의 분위기를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병풍에 그려진 장면이나 기본 구도는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삽도와 같은 부분이 많아서 김홍도의 주도적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김홍도가 그린 기록화로서의 풍속화 중 특이한 것으로 평양도가 있다. 평양은 옛날부터 산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국방과 경제의 요충으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따라서 명승지로서, 혹은 어떤 행사가 열린 장소로서 그림으로 그려지고는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명종 15년(1560)에 왕이 평양의 산천과 누각 등의 명승을 그려 채색병풍을 만들게 하고, 글 잘하는 신하들에게 명하여 시문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또 명종은 평양 이외에도 1562년에는 성천(成川), 영흥(永興), 의주(義州), 영변(?邊) 네 곳을 8폭병풍으로 그리게 하고, 그 끝 폭에 신하들로 하여금 시문을 지어 써넣게 하였다고도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전주도>도 그렸다고 하며, 한양의 거리 모습을 그린 <城市全圖>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전하는 <평양도병풍> 중에는 김홍도가 밑그림을 그리고 목판으로 인쇄한 것이 상당수 있다. 또 평양시내와 대동강에서 벌어진 선유락(船遊樂)이나 여러 가지 행사의 기록화도 김홍도의 것으로 전하는 것이 있다. 비록 후자는 김홍도의 원작은 아니지만, 김홍도가 평양도를 잘 그렸기 때문에 그 명성을 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홍도가 밑그림을 그린 목판본 평양도는 19세기와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모방하고는 하였다. 이런 평양도도 당시 평양 지방에서 벌어지던 사회풍속의 모습을 분명하게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는 귀중한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1778년 김홍도(金弘道,1745-1816 이후)의 나이 서른 넷에 강희언(姜熙彦, 1738~1782년경)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屛)로서 선비가 세속을 유람하면서 풍류객의 눈에 비친 양반, 서민들의 세태 풍속을 담은 일종의 풍속화로 주인공은 대개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로 등장한다. 

 

각 폭의 위쪽에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이례적으로 그림마다 익살스런 그림평을 달아 놓았다. 산수인물화 형식의 이 그림은 대장간, 강변, 벼타작 장면등 다양한 세상살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로 90.9cm, 가로 42.7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취중송사 醉中訟事
노변치려 路邊治鑢
진두대주 津頭待舟
매염파행 賣鹽婆行

<취중송사 醉中訟事> ‘물품을 공급하는 이들이 각기 자기 물건을 들고 가마의 앞뒤에 있으니 태수의 행색은 초라하지 않다. 시골사람이 나서서 진정을 올리고 형리가 판결문을 쓰는데 술 취한 가운데 부르고 쓰는데 오판이나 없을런지'

<노변치려 路邊治鑢> '논에서 해오라기 날고 높은 버드나무에 시원한 바람불고 풀무간에서 쇠를 두드리고, 나그네는 밥을 사먹는데 시골주막의 쓸쓸한 관경이나 오히려 한가로운 맛이 드네.'

<진두대주 津頭待舟> '백사장 머리에 나귀를 세워 놓고 사공을 부르네, 나그네 두세 사람 같이 서서 기다리는 강가의 풍경이 눈앞에 완연하다.'

<매염파행 賣鹽婆行> ‘밤게.새우.소금으로 광주리와 항아리에 그득 채워 포구에서 새벽에 출발한다. 해오라기 놀라서 날고 한 번 펼쳐보니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듯하다.’ 시골 아낙네들이 아이를 업고 생선을 머리에 이고서 시장에 가는 모습이 그 삶의 질퍽함까지 그려지며 정겹다. 김홍도 그림의 최고의 예술적 가치는 이런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그림은 사람의 온기와 정이 흐른다.

 

 

파안흥취 破鞍興趣
노상풍정 路上風情
타도락취 打稻樂趣
과교경객 過橋驚客

<파안흥취 破鞍興趣> ‘해진 안장에 비루먹은 말 타고 가는 나그네 행색이 심히 초라하건만 무슨 흥취가 있다고 목화 따는 시골 아낙네를 쳐다보는고?’

<노상풍정 路上風情> '소 등에 올라탄 시골 노파를 나그네가 말고삐를 느슨히 하고 응시하는가. 순간적인 광경이 웃음을 자아내네.'

<타도락취 打稻樂趣> '벼타작 소리 들리는데 탁주는 항아리에 그득, 수확을 지켜보는 이 또한 재미있어 보이네.'

<과교경객 過橋驚客> '다리 아래 물새는 당나귀 발굽소리에 놀라고 당나귀는 날으는 물새에 놀라네. 사람은 당나귀가 놀라는 것을 보고 놀라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 입신의 경지에 들어갔다.'

 

 

표암과 단원은 호랑이 그림을 합작해 그리는 등 신분을 초월한 스승과 동료의 인연으로 30년 이상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노년에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단원을 ‘그림의 모든 분야에서 묘품을 보인 신필’로 격찬했던 표암은 “단원과 관청에서 아침 저녁으로 같이 거처했으며 나중에는 예술계에서 나이를 잊고 지내는 벗이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강세황은「단원기우일본(檀園記又一本)」에서 김홍도가 조선 400년 만에 파천황(破天荒)적 솜씨라 극찬하고 풍속에 크게 뛰어남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그가 즐겨 그린 길거리ㆍ나룻터ㆍ가게ㆍ놀이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히고 있다. 이는 강세황 자신의 풍속화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데, 김홍도가 풍속화에만 뛰어난 것이 아님을 이에 앞서「단원기(檀園記)」에서 고금의 화가들이 한 가지만을 잘하고 여러 가지를 다 잘 하지는 못하나 김홍도만은 모든 분야에 능함(妙品)을 천명하고 있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기는《단원풍속도첩》이나, 화면에 제작연도 및 강세황의 화평 그리고 한 세트를 이루고 있는 점 등에서 회화사적 의의가 자못 큰 그림이 바로 <행려풍속도>이다. 김홍도가 34세 때는《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등을 남기는 등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낱장씩 전해온 것으로 최근 병풍으로 하였는데 순서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겠다. 

매 폭마다 강세황이 그림의 내용을 간파한 화평이 있어 감상에 도움을 준다. 

 

<취중송사(醉中訟事)>는 <평생도>에서도 엿볼 수 있는 구도이며, 대장간ㆍ타작ㆍ노상과안 등《풍속도첩》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아울러 이 그림에 등장된 소재들은 여러 풍속화 병풍에 있어 견본격적인 내용이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상사를 따뜻한 시각으로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김홍도의 천재성이 빛난다 하겠다.

 

 

출처: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작품세계 -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屛)외 1 - 박물관 이야기

 

 

 

 

김홍도의 사계풍속도 - 기메박물관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 전칭의 <사계풍속도四季風俗圖>, 연대미상

 

김홍도의 작품 가운데 행려풍속도는 현재까지 1779년 그가 34세 때 강희언의 집 담졸헌에서 그린 것과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 소장의 행려풍속도 2점이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것은 원래 낱장으로 전해오는 것을 팔곡병풍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우리나라 산천을 유람하는 풍류과객의 관찰자 입장에서 지방의 풍속 장면을 직접 둘러보고 취재하듯이 그린 것으로, 작가가 화면 안에 직접 들어가 그 생활상을 관심과 애정으로 둘러보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 병풍은 당시의 풍속과 기물, 복식 등 풍부한 내용을 담은 풍속화로 볼 수 있다.
기법상으로는 비단 바탕에 부감하듯 인물이나 배경을 세밀하고 자세히 묘사했다. 이 병풍은1901년 루이 마랭이 파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여행하면서 보름 간 서울에 머물렀을 때구입한 것으로, 그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가 사후 1962년에 그의 부인이 고인의 이름으로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출처: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행려풍속도 8폭 병풍 -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노상송사 路上訟事
기방쟁웅 妓房爭雄
가두매점 街頭買占
노상풍정 路上風情

노상송사 路上訟事 / 사또 행차에 길에서 송사를 하는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조선 후기 사회상을 반영하여 풍속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잔뜩 찌푸린 가마꾼과 눈꼬리를 올리고 쳐다보는 사령 등 당시의 분위기가 눈 앞에 선하다.

 

기방쟁웅 妓房爭雄 / 조각달이 낮게 뜬 밤, 부감법으로 기생집 안 풍경과 집 밖의 풍경. 기생이 호객하는 장면과 멱살 잡힌 취객의 모습 등 기방풍속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문 주변에는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라고 적혀 있고 개와 노파는 대문 사이로 기생과 취객을 쳐다보고 있다. 대문 밖 시끄러운 풍경과는 사뭇 다른 집안 풍경은 정적이고 한가롭다. 기둥과 마루, 기물, 이불 등은 자를 사용하여 반듯하게 그어내는 계화법을 사용하여 그렸고,집안 마루에서는 기생에게 담뱃대를 받으려는 사람과 무릎을 세우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 마당에 있는 어린 양반은 장죽에 초롱을 달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참고: 기생집에서 노는 격식 - 우리역사넷)

 

가두매점 街頭買占 / 길 위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당패들이 부적을 팔고 있는 모습이라고 짐작된다.
사당패들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구경하는 사람들은 선비, 노파, 어린아이 등 다양한 인물들로 배치되고 냇가 위의 다리에 음식상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 등 인물들이 가장 많이 표현된 작품이다. 뒤쪽 기와집과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고, 다리 난간의 조각이나 반듯한 둑을 보면 부자들이 사는 도시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노상풍정 路上風情 / 그림의 중앙 부분은 버드나무잎과 줄기의 묘사를 정제된 필법으로 꼼꼼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뒤쪽으로는 논과 밭 사이로 여인과 아이가 논길로 참을 들고 가고 있으며, 멀리에는 산성과 집, 산들이 보이는 지도식 그림이다.
그림 하단의 좁은 길에 말을 타고 가는 양반과 아이를 안고 소를 타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말을 타고 가는 양반이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쳐다보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에로틱한 시선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후원유연 後苑遊宴
파안흥취 破鞍興趣
설중행사 雪中行事
설후야연 雪後野宴

후원유연 後苑遊宴 / 사대부 뒤뜰에서 선비들과 여인들이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장면이다.
거문고를 타고 있는 사람, 대금을 불고 있는 사람, 그것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그 뒤에 보료를 깔고 안침에 턱받침을 하고 비스듬히 누워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양반의 모습으로양반들의 유흥과 아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오른쪽 하단에는 음식상을 올리는 여인네들과 왼쪽 하단에 선비와 담뱃대를 물고 있는 기생이 무엇인가 흥정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후원으로 통하는 문은 대나무로 만든 기둥에 등나무를 올리고 연못과 큰 오동나무, 대나무, 괴석 등이 심어져 있어 당시 사대부가의 후원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파안흥취 破鞍興趣 / 말을 타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선비가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고 있는 두 여인을 훔쳐보고 있는 장면이다.
갈대와 까치, 시냇가 등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풍요로운 가을 풍경을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다

 

설중행사 雪中行事 / 겨울아침 눈 쌓인 성벽 아래 도톰한 솜옷에 털로 만든 방한구를 걸친 양반이 길거리에서 전모를 쓴 기생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나귀를 타고 가는 양반, 사릿문 틈으로 엿보는 여인, 아궁이 청소부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 길 위에서 기생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부각시킨 그림으로 당시의 복식과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설후야연 雪後野宴 / 바위 사이의 화면 왼쪽으로 눈 덮힌 소나무 두 그루가 뒤엉켜 배치되어 공간 분배와 구도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멀리 성벽 위에 보름달이 떠 있는 밤, 술잔을 주고 받으며 기생들과 고기를 구워먹는 장면으로현실적이며 서정적이다.

 

 

박태숙 작가의 모사작 (행려풍속도8폭 - 노상송사(路上訟事), 기방쟁웅(妓房爭雄) - 시사N라이프)

 

 

조선시대 풍속화

풍속화(風俗圖), 조선시대, 종이, 세로 76cm, 가로 39cm, 국립중앙박물관.

 

●  풍속화(風俗圖), 다른 이름은 야연(野宴), 가두매점(假頭買占), 사계풍속도(四季風俗圖), 고기굽기이다. 시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일상을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풍속화로 본래 병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속 장면에 기방, 나들이 등 유흥의 소재가 많아진 것은 후대의 양상이다. 8폭 중 현재 4점이 전시된 이 작품은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 전칭의 <사계풍속도四季風俗圖>와 내용과 구성이 유사하다. 

 

백성들이 고관의 행차에 다가가 소송을 제기하는 장면, 길거리에 기녀와 사당패 놀이가 등장하는 장면, 가을날 단풍놀이를 하는 여인들, 겨울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일상 등 조선 후기 향락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풍속 장면에 집중하여 인물을 그리고 채색하였다. 정해진 도상圖像을 따라 그린 그림으로 화가畵家의 개성적個性的 표현表現이나 독창성獨創性 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시정 사람들의 일상적日常的 생활상生活相을 보여준다. (출처: 우리궁궐 지킴이)

 

 

 

 

김홍도 필 풍속도 2

김홍도 필 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김홍도(金弘道, 1745-1816 이후), 세로 121.8cm, 가로 39.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우리궁궐 지킴이

 

 

 

 

 

김홍도 산수풍속도 8첩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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