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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가나의 혼인 잔치


Marriage at Cana


파올로 베로네세 (Paolo Veronese, 1528 ~ 1588) 는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서 티치아노에게 큰 영향을 받아, 빈틈없는 구도와 화려한 색채의 장식화를 주로 그렸다. '베네치아파'를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요한 복음서에만 등장(2장 1절 ~ 12절)하는 예수의 일곱가지 기적 중 첫번째 기적으로, 가톨릭에서는 원음(Κανὰ)을 살려서 카나의 혼인잔치라고 한다.


이 작품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가나의 친지 혼인잔치에 참석했다가 술이 동나자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는 기적을 주제로 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과 함께 가나의 지인(혹은 친척)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식 피로연 중에 그만 포도주가 다 떨어지게 되어 하인들이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성모 마리아가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예수는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면서,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면서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 하자, 예수는 하인들에게 물통에 물을 부은 후 그것을 그대로 손님들에게 내어주라고 명했다. 


하인들이 그대로 하자 놀랍게도 물이 포도주로 변해있었고, 그것도 전에 마시던 것보다 더 질이 좋아서 연회를 책임진 사람이 "보통 좋은 술은 먼저 내놓고 나중에는 덜 좋은 술을 내놓는 법인데 아직도 좋은 술을 남겨뒀구려!" 하고 감탄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제자들이 놀라워했다는 이야기다.


가나의 정확한 위치는 성경학자들과 고고학자들 사이에 분분한데, 갈릴리의 마을 몇 군데가 그 후보 지역들이다. 

(출처: 들이끼 속의 烏竹)



Les Noces de Cana 가나의 혼인 잔치 (1562) – Paolo Veronese(1528- 1588), 666cm X 990cm, 루브르 미술관

가나 혼인잔치 작품은 베네치아 ‘가나’ 지방의 한 결혼식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중에서 가장 큰 벽화라고 한다.


베네치아 공화국 최후의 날,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약탈자들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예배당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틴토레토와 바사노의 성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목적지는 수도사들의 식당이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파올로 베로네세 (Paolo Veronese)의 명화 '가나의 혼인잔치'였다.


200년 넘게 성당의 식당 벽을 장식하고 있던 가로 10여m에 폭 6.8m인 이 작품은 화가가 작품을 완성한 이래 수많은 제왕과 귀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류작을 탄생시켰다. 이 베네치아 화파의 걸작은 마침 창문을 통해 떨어지는 빛을 받으며 자신의 마지막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림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식당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운반상의 편의를 위해 그림은 무자비하게 반으로 절단되었다.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도사들의 눈에 통한의 눈물이 괴었다. 베로네세의 명작은 이렇게 베네치아의 멸망과 운명을 함께 했다.  (출처: 들이끼 속의 烏竹)


현재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맞은편에 전시되어 있다.



▲ 틴토레토(Tintoretto)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594년작. 365cm x 568 cm


성당의 예배당에 있던 틴토레토의 이 그림 역시 대단한 작품이건만 나폴레옹의 군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수도사들의 식당에 있던 바로파올로 베로네세 (Paolo Veronese)의 명화 '가나의 혼인잔치'만 노렸다고....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Basilica di San Giorgio Maggiore)'


이 성당은 1566년과 1610년 사이에 건축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 해상에 떠 있는 산 조르조 섬에 위치한 성당이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은, 산 마르코 광장 앞 항구에서 바다쪽으로 정면 멀리 종탑이 보이는 건물로, 바로 옆의 섬이 바그너가 최후를 마친 벤드라민 궁전(Palazzo Vendramin Calergi)이 있는 곳이다.




무엇이 이 그림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것일까. 나폴레옹 군대의 최고 전리품으로 지목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가의 독특한 작품 소화 방식에 있었다.  (출처: 들이끼 속의 烏竹)



Paolo Veronese: The Wedding at Cana (4,214 × 2,863 pixels.)


'가나의 혼인 잔치' 작품을 보면 웅장한 고대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에서 결혼식 하객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작품은 평범한 결혼 잔치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성서적 주제를 담고 있어 작품의 중요 인물인 신랑 신부는 화면 왼쪽에 앉아 있고 진수 성찬이 차려진 식탁 중앙에 후광에 싸인 예수가 앉아  있다. 그 옆으로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이 앉아 있다.


예수와 마리아가 잔치의 중심이다. 베네치아의 상류층 복장을 한 하객들과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단순한 옷 차림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화면에는 터번을 쓴 사람, 동양인 등  다양한 사람과 등불, 자수가 놓인 식탁보, 도자기 등은 상업이 발달해서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당시의 베네치아를 나타낸다. 


16세기 ‘베네치아화파’의 대표 화가, 베로네세(Paolo Veronese)는 이 작품에서 마치 무대 연출가가 된 듯 13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을 궁정풍의 저택에 치밀하게 배치했다. 주역과 단역 배우들이 저마다 활기찬 몸짓을 하고 있는 이 공간은 성서의 신비로운 공간이 아니라 현세의 행복을 찬양하는 연극적 공간에 다름 아니다. 예수의 기적이라는 주제는 현세의 화려한 커튼에 가려 머쓱해진 느낌이다. (출처: 들이끼 속의 烏竹)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께서 당신의 천주성을 드러내신 첫 번 기적 사건인데, 이 작품은 화려함과 장려함이 너무 대단해서 종교화로서는 좀 어색한 감이 있으나 이것은 당시 경제적으로 풍요했던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 작품 배경이 가나의 시골 분위기 보다는 어떤 왕족이나 세력있는 귀족의 저택처럼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중간 좌석을 예수님과 성모님이 차지하고 계시면서 이 작품의 종교성을 지키고 있다. 비록 혼인 잔치이고 성모자는 초대 손님 자격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가 아님을 강조함으로서 화려한 분위기에서 희석되기 쉬운 종교적 분위기를 키우고 있다. 성모자의 모습은 너무도 단순하여 주위의 화려함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물을 술로 변화시킴으로서 세상에 구세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신 경건성을 일깨우고 있다.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건물들이 축제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윗부분에 두 사람의 요리사들이 잔치 음식에 쓰기 위한 고기를 자르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인간 구원을 위해 당하셔야 할 예수님의 수난을 미리 예견하여 상징하는 것이다. (출처: 작은형제회)



왼쪽 테이블에 신랑신부를 비롯하여 오스만 터키의 술탄 술레이만 1세(Suleiman the Magnificent 황금색 터번의 인물

오스트리아의 엘리노어 공주(Eleanor of Austria) 등이 앉아 있다.


이 작품에는 13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화려한 복장들이며 여기에서 당시 사치의 극치를 달리던 베네치아의 페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혼인 잔치이면서도 주빈석을 성모자에게 양보하고 신랑 신부를 옆자리에 배치함으로서 작품의 종교적 성격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신랑에게 권하기 위해 들고온 포도주를 흑인 노예가 권하고 있다.



 

In The Wedding Feast at Cana (1563) Veronese shows the sated guests at the nuptial banquet-table awaiting the dessert-course wine service. The guests awaiting the new, red wine include Suleiman the Magnificent, an elegant woman discreetly cleaning her teeth with a toothpick, and a woman urging her husband to ask the bride about the new red wine they have been served.



The musicians providing ambience for The Wedding Feast at Cana (1563) are the personified by Veronese (viola da braccio), and the principal painters of the Venetian school: Jacopo Bassano (flute), Tintoretto (viola da braccio) and Titian (violone); standing beside Titian is the poet Pietro Aretino. (4,606 × 3,180 pixels.)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예수나 사도제자 또는 신랑, 신부가 아니라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당대의 화가 4명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작품의 가운데 앞에 4인조 악단이 보이는데 왼쪽부터 베로네제(흰옷)가 비올라를, 바사노(Jacopo Bassano, 자줏빛 옷)는 오보에 비슷한 악기를, 틴토레토(Tintoretto, 파란 옷)는 바이올린을, 티치아노(Titian, 붉은 옷)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면서 좌중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운데 예수와 성모가 있을 뿐 종교화라기 보다 귀족들의 호사스러움을 두드러지게 보여준 까닭에 이러한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악사가 화가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베네치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악이 없는 베네치아인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화가 열전'에 따르면 조르조네는 플루트를 너무 잘 불어 귀족들의 초대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고,틴토레토는 음악 마니아였으며, 티치아노는 자신의 작품을 휴대용 오르간과 서슴없이 맞바꿨다고 한다. 그들은 회화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도 현세를 찬양했던 것이다. 악사들 사이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는 물질적인 쾌락은 순간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출처: 들이끼 속의 烏竹)



오른쪽 테이블에는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1세(Francis I), 사촌동생 제인 그레이를 재위 9일 만에 참수하고 왕이 된 잉글랜드의 매리 1세(Bloody Mary), 이탈리아의 여류시인 콜로나(Vittoria Colonna), 매리 여왕의 사촌으로 프란시스 1세와 술레이만 1세를 전쟁에서 물리치고, 스페인을 통일하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의 왕 카를 5세(Charles V), 추기경 등 수많은 지도층 사람들이 등장한다.


성모님의 요청으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을 과방지기들이 손님들에게 보내기 위해 작은 항아리로 옮겨 붓고 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사랑으로 변한 것의 상징임과 동시 예수님의 최후만찬을 연상시키기에 축제의 성격 속에서도 이 기적의 진정한 의미를 강조하는 경건함이 돋보이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복장이 더 없이 화려한 것은 비록 혼인 잔치이긴 해도 범상한 것이 아닌 이 연회의 천상적 성격을 더 드러내고 있다. (출처: 작은형제회)



▲ 잔치에 쓸 고기(양)를 장만하는 하인들 


예수의 머리 위로 하인들이 잔치에 쓸 고기를 자르고 있는 모습은 후에 있을 예수의 고난을 상징한다.



▲ 안드레이 팔라디오(Andrea Palladio)풍의 건축물 (그림의 왼쪽)



▲ 안드레이 팔라디오(Andrea Palladio)풍의 건축물 (그림의 오른쪽)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1508년~ 1580년)는 서양건축의 발전과정 전체를 통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설계한 궁전과 빌라는 이후 400여 년 간 서양에서 모방되었다. 그는 주택의 평면을 체계화한 최초의 건축가로서, 일관되게 고대 그리스·로마 신전의 정면을 사용했다.


팔라디오 건축물과 출판물의 영향은 18세기 건축, 특히 잉글랜드·아일랜드·미국·이탈리아 등지에서 팔라디오 양식이라는 하나의 양식을 창출하면서 절정을 이루었고 이 팔라디오 양식은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이 그림이 명성을 얻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작품이 고대건축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성당 공간에 민간건축을 접목하려한 팔라디오의 건축 이념을 회화에 투사한 것 때문이다. 


팔라디오는 건물의 채광 효과를 중시하고 개별 건축 요소들 사이의 어울림을 중시했는데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은 그의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베로네세의 그림도 실은 그러한 팔라디오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건물의 일부로 고안된 것이다. 


물론 이 회화의 거장은 팔라디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볕이 가장 잘 드는 위치에 색채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화려한 자연안료로 그려졌다. 또 그림 속의 공간을 연극 무대처럼 구성함으로써 식당 내부의 공간이 그림 속의 공간으로 확장되게끔 했다.  




현세성이 물씬 풍기는 건물과 작품의 개방성은 베네치아의 종교적 관용과 함께 세속적 권력의 종교에 대한 우위를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베네치아 종교재판소의 성직자 판사는 정부에서 파견된 판사 3인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같은 시대 로마나 피렌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를 후미진 곳에 앉힐 수 있다는 화가의 발상, 이런 그림을 성당 안에 걸어도 된다는 성직자들의 유연한 사고 속에서 베네치아의 문화적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신과 함께하는 식탁이라.왕과 귀족들이 이 그림을 탐낼 만하지 않은가. 


1797년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로 옮겨졌던 이 작품은 현지에서 봉합돼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의 인공조명 아래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고 있다. (출처: 들이끼 속의 烏竹)



모나리자 전시실의 실제 전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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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per in Emmaus, VERONESE, Paolo, c. 1560, Oil on canvas, 242 x 416 cm, Musée du Louvre, Paris


베네치아 미술의 황금시대를 구가한 파올로 베로네세의 '엠마오의 만찬' 장면입니다. 

유난히 많은 등장인물이 4m가 넘는 대형 화폭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가 32살에 그린 그림입니다. 





▲ 파올로 베로네세의 '악의 무리에 번개를 내리는 쥬피터' 1554~56년작. 560cm×3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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