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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Chopin: Nocturne No. 20

 

쇼팽, 녹턴 [ Chopin, Nocturne ]

“피아노의 시인” 이란 별칭을 가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은 가장 위대한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필드가 창시한 살롱음악인 녹턴을 깊고 세련된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일반적인 춤곡인 폴란드의 마주르카나 빈의 왈츠의 선율과 표현의 폭을 넓혔다. 또한 전주곡을 독립적인 장르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세운 바르샤바 공국의 한 도시인 젤라조바볼라에서 태어났다. 

 

녹턴이라는 명칭은 18세기 때 저녁파티에 주로 연주한던 곡을 일컫는다. 즉 주로 밤에 연주했던 세레나데같은 곡이였다.


우리가 흔히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부르는 피아노를 위한 녹턴(Nocturne)은 원래 영국 작곡가인 존 필드(1782~1837)가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로부터 영향을 받아 창작한 음악장르다. 그는 1812년경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으로 녹턴(몇 곡은 로망스로 이름붙여지기도 했다)을 작곡했고, 이후 약 18개의 녹턴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음악 장르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의 벨칸토 오페라를 사랑했던 쇼팽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쇼팽은 청년시절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21개의 녹턴을 꾸준히 작곡했는데, 쇼팽의 녹턴은 특유의 자기성찰적인 측면으로 인해 19세기를 지배했던 외향적 비르투오소(virtuoso)를 위한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한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이탈리아의 노트르노(Notturno) 형식과도 달랐고, 멘델스존에 의해 창안된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와도 다른 독특한 정서를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피아노의 발달에 따른 악기의 개량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음악이 녹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스테인 페달로 왼손의 효과를 확장시킬 수 있었고 보다 강력해진 강철 프레임으로 인한 장력의 증대 또한 오른손 멜로디 표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쇼팽은 연주에 있어서 힘이 강하지 않았던 탓에, 리스트와 같은 극적인 연주 효과를 낼 수 없었다. 그대신 쇼팽을 후원했던 플레이엘사의 개량된 피아노는 쇼팽의 섬세한 표현력을 더 정밀하게 재현해내 청중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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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부터 1847년 사이에 작곡된 쇼팽의 19개의 녹턴은 형식에 있어서 존 필드의 그것을 거의 따르고 있다. 단순한 반주와 세련된 선율로 A-B-A’의 가곡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쇼팽은 존 필드의 형식을 그다지 많이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A 부분은 항상 멜로디컬하고 리드미컬한 오른손 선율이 지배적으로서 벨칸토적 장식음들이 도드라지며 성악적인 환상과 효과를 배가시킨다. B 부분은 A의 주제와는 다른, 보다 밀도가 높고 긴박한 표현력과 극적인 감수성을 요구한다. A’는 A에 대한 회귀로서 긴장감을 소멸시킴과 동시에 밤이라는 시간대 특유의 무감각함을 상징한다. Op.32-2, Op.72-1, Op.48-2, Op.55-1 등에서 형식적인 변화가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을 제외한다면 쇼팽의 다른 무곡들, 즉 마주르카나 왈츠에서 사용한 세도막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적 감수성으로 세련된 깊이에 도달하다 
1830년부터 31년 사이에 작곡된 녹턴 Op.9는 총 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쇼팽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출판된 녹턴이다. 이 곡에서부터 작곡가 쇼팽은 자신만의 강한 개성을 보여준다. 특히 Op.9의 3번 B부분에서의 쇼팽만의 독창적인 표현력, Op.9-2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다. 특히 Op.9-2는 쇼팽의 녹턴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영화와 TV를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에서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Op.15-3은 1830년부터 33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서 단순한 살롱풍의 음악을 뛰어넘는 깊이감과 세련미를 자랑한다. 특히 2번의 형식적인 불균형함과 3번의 왈츠풍의 3박자는 기존의 통념적인 녹턴에서 벗어나고 있는 쇼팽의 독창성을 대변해 준다. 

1834년부터 35년 사이에 작곡된 Op.27은 두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1번 C 샤프 단조의 어둡고 불가사의한 매력과 2번 D플랫 단조의 영롱하면서 유혹적인 아름다움은 마치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를 연상시킬 정도의 미니어쳐적인 형식적 대비의 극치를 보여준다. A와 B 주제가 세 번에 걸쳐 등장하는 파격적인 형식미는 말할 것도 없고,Op.27-2가 갖고 있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그 하나만으로도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p.32(1836-1837)와 Op.37(1838-1839) 역시 두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평범한 느낌의 녹턴이지만, Op.48의 1번은 서사적인 동시에 드라마틱한 음악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며 쇼팽의 발라드나 피아노 협주곡을 능가하는 기교와 장대함이 펼쳐진다. Op.48의 2번은 열정적인 B 부분 이후에 휴식처럼 재현부가 나타나는 형식적인 특이함을 가지고 있다.

Op.55의 1번은 론도 형식의 변형으로서 투명한 주제가 네 번 반복한 다음 먀채 F장조 환상곡에서 시도한 것과 같은 화성의 변화가 비약적으로 전개된다. 2번은 쇼팽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바흐와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대위법적 성향이 드러나며 세련미와 지성미를 한껏 고조시키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3년에 작곡된 이 두 개의 녹턴은 모두 벨칸토적인 아름다움이 한껏 돋보이는 곡이다. 

녹턴에 있어서 가장 마지막에 작곡된 1845년에 창작된 Op.62의 1번과 2번은 풍부한 서정성과 독창적인 표현력, 주제들의 조화로운 대화가 돋보이는 녹턴이다. 멜랑콜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유작 녹턴인 Op.72의 1번(장송 행진곡 C단조와 3개의 에코세이즈와 함께 Op.72로 묶여 쇼팽 사후 출판되었다)은 1827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최근에는 이보다는 훨씬 후기에 작곡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보통 녹턴 20번으로 불리는 유작 녹턴 C샤프 단조는 쇼팽이 청년기 시절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진 곡으로 1895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섬세한 분위기가 듣는 이를 압도하는 이 곡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사용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 녹턴이다. 그러나 정작 왼손과 오른손의 다른 박자에서 기인하는 어려움과 유명세로 인해 바이올린 소품으로도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기도 한다. 오랜동안 잊혀져 있던 녹턴 21번 역시 유작으로서 1938년 바르샤바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작곡연대는 1830년 혹은 25년이나 27년 등등 이견이 분분하다.

 

 

녹턴 1,2,3번(작품번호 제9번)이 묶어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쇼팽의 녹턴은 비평가들로부터 많은 비판과 칭찬을 섞어 들었으나 대체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기에 비판을 한 비평가들이 후에는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쇼팽이 1849년에 사망한 후 녹턴은 각 곡마다 인기가 천차만별이었으나 녹턴 2번(작품번호 제9-2번)과 녹턴 8번(작품번호 제27-2번) 두 작품의 인기가 특히 높았다.

쇼팽의 생전과 사후에 생존해있던 많은 작곡가들은 쇼팽의 녹턴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이 고유한 작품에 표출되기까지 이르렀다. 요하네스 브람스와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작곡가들은 쇼팽이 자주 사용하던 단순한 멜로디 작곡 기법과 방식을 차용하였고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과 프란츠 리스트와 같은 작곡가들은 쇼팽의 녹턴에 숨어있는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로써 쇼팽이 작곡한 스물 한개의 녹턴이 낭만시대의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추천 음반 
가장 먼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녹턴에 있어서 부동의 레퍼런스로 손꼽을 수 있다. 담백한 터치와 정갈한 분위기로 인해 과장 없는 깊이감을 자아내는 루빈스타인은 20세기 초반부터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유명세를 떨친 탓에 1930년대, 1949~50년, 1965~67년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녹턴을 녹음했다. 이 중 마지막 스테레오 버전(RCA)이 템포나 분위기, 녹음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출신의 상송 프랑수와(EMI) 또한 녹턴에 있어서 최고의 연주를 보여주는데, 그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와 즉흥성 넘치는 터치 등등은 폴란드적인 쇼팽 해석과 여러 면에서 좋은 대조를 이룬다.

현대의 연주로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숨막히는 듯한 긴장감과 구조적 완결성이 돋보이는 연주(DG)와 음색과 분위기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넬슨 프레이레의 연주(DECCA)가 유독 돋보인다.

 

 

Frédéric Chopin - 19 Nocturnes (Rubinstein)

0:00 - Nocturne No.1, Op.9 No.1
5:28 - Nocturne No.2, Op.9 No.2
9:56 - Nocturne No.3, Op.9 No.3
16:46 - Nocturne No.4, Op.15 No.1
21:08 - Nocturne No.5, Op.15 No.2
25:08 - Nocturne No.6, Op.15 No.3
30:13 - Nocturne No.7, Op.27 No.1
35:54 - Nocturne No.8, Op.27 No.2
42:11 - Nocturne No.9, Op.32 No.1
46:55 - Nocturne No.10, Op.32 No.2
52:45 - Nocturne No.11, Op.37 No.1
59:09 - Nocturne No.12, Op.37 No.2
1:06:05 - Nocturne No.13, Op.48 No.1
1:12:02 - Nocturne No.14, Op.48 No.2
1:19:23 - Nocturne No.15, Op.55 No.1
1:25:05 - Nocturne No.16, Op.55 No.2
1:30:54 - Nocturne No.17, Op.62 No.1
1:37:46 - Nocturne No.18, Op.62 No.2
1:43:08 - Nocturne No.19, Op.72 No.1

 

 

Chopin Nocturne in C-sharp minor, Op. posth. Jan Lisiecki

 

 

Chopin: Nocturne No.20 In C Sharp Minor, Op.Posth.
쇼팽 녹턴(야상곡) 20번 Op.posth. 유작1번
Frederic F. Chopin 1810~1849 : 폴란드

 

녹턴 20번 c샵단조는 조용하면서 재치 있는 액센트가 인상적이지만, 쇼팽 특유의 고뇌와 애수도 진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쇼팽의 청년기 시절 작품이지만 그의 사후에야 발견되었는데 그 악보에는 'Lento con gran espressione(느리고 풍부한 표정으로)'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나중에 'Nocturne'이라고 이름 붙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곡의 중간 부분 멜로디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Op.21) 1악장의 일부 멜로디를 차용한 선율이 사용되는데 누나 루드비카가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습하기 전에 치도록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인 1829년에서 1830년 사이에 만들어진 곡이다.

 

'녹턴 20번'은 쇼팽이 스무 살이던 1830년 11월에 서유럽 무대에서 우뚝 서겠다는 꿈을 안고 고국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누나 루드비카 쇼팽(Ludwika Chopin)에게 편지와 함께 이 곡을 헌정했으며, 쇼팽 사후에 발견되어 1895년에 유작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빈에 도착한 뒤 2주 후 폴란드에선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11월 봉기'가 일어난다. 이 곡을 누나에게 보낸 시점은 빈에는 도착했지만 미처 11월 봉기 소식을 접하지 못한 때라고 한다.

 

쇼팽은 훗날 이 곡의 사본을 약혼녀 마리아 보진스키에게 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1836년 약혼을 했지만, 여자 집안에서 건강을 문제 삼자, 1838년 7월 헤어지고 말았다. 한편 쇼팽은 세살 위 누나 루드비카와 두 명의 여동생을 뒀는데,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루드비카는 쇼팽의 임종을 지켜본 유일한 가족이었다. 1849년 봄 건강이 악화되자 쇼팽은 누나에게 파리로 와 달라고 편지를 쓴다. 그 해 8월 프랑스로 건너온 루드비카는 10월17일 쇼팽이 숨질 때까지 동생의 곁을 지켰다. 다음날 부검 과정에서 따로 떼어낸 쇼팽의 심장은 누나 루드비카의 손에 들려 폴란드로 운반되었다.

 

이 작품은 쇼팽이 부여한 작품번호가 없기에 '사후(死後)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posthumous'의 약자인 'posth'를 작품번호에 기입해 'Chopin, Nocturne No.20 in C-Sharp minor, Op.posth.'라고 표기한다. (이 곡의 작품번호를 'Op.posth'가 아닌 'KK IVa No.16'로 적기도 한다. KK는 쇼팽의 작품을 정리한 벨라루스 출신의 여성 음악학자 '크리스티나 코빌란스카'(Krystyna Kobylanska)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쇼팽의 작품 중 Op 번호가 없는 곡에 KK 번호를 부여했다고 한다. 생전에 작품번호 없이 발표되었을 경우 'KK II', 사후에 발견되었을 경우 'KK IV', 쇼팽의 곡이 확실한지 의심이 들 경우 'KK Anh.l.a.'를 붙였다.)

 

 

문화빅뱅 더 콘서트 -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 쇼팽 _ 녹턴 제20번 올림 다단조 Op.posth. 20151230

 

 

(조성진) Seong Jin Cho - Chopin: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Op. Posth (2017)

 

 

"The Pianist" film editing Scene with Chopin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Op. Posth (Piano - Stefan Askenase)

"The Pianist" :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Wladyslaw Szpilman (Wladek) played this music in the last live broadcast for the Polish Radio on 23.9.1939. An hour later German bombs destroyed its power supply and the Warsaw Radio closed for long 6 years.

(출처 : Chopin Nocturne No. 20 perf. by Wladyslaw Szpilman - "The Pianist" - Original Recording)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다 폭격을 당한다. 이후 유태인인 스필만과 가족들은 게토에서 생활하지만, 결국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된다. 가족들을 죽음으로 내보내고 간신히 목숨을 구한 스필만은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까지 생존을 지켜나간다. 나치의 세력이 확장될 수록 자신을 도와주던 몇몇의 사람마저 떠나자 완전히 혼자가 되어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끈질기게 생존을 유지하는 스필만. 어둠과 추위로 가득한 폐건물 속에서 은신생활 중 스필만은 우연찮게 순찰을 돌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되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순간,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시작하는데…. (전쟁과 유대인 학살을 그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The Pi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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