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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울산 반구대 암각화





대곡리 암각화 입구 

사연댐의 물로 인하여 항상 물 속에 잠겨 있는 바위그림은 겨울 또는 큰 가뭄이 들 때에나 겨우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에 새겨진 학 

반구대 곳곳에는 옛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글씨와 그림 등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반구대 

반구대는 거북이 엎드려 있는 듯한 구릉 모습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반구대는 이곳에서 귀양살이하던 정몽주가 자주 찾은 곳이라 한다.

출처 : 대곡리 암각화와 반구대 답사여행




우리나라 신석기 말부터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1810 x 1843]

대부분이 동물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울산의 국보 제 285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蔚山 大谷里 盤 亀台 岩刻画)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 북단의 지류인 대곡천 중류, 사연댐 끝자락 즈음 북쪽을 향해 있는 수직바위 벽면에 새겨져 있다. 이곳 반구대는 일찍이 고려말 포은 정몽주 선생이 머무른 곳으로 계곡의 경치가 매우 뛰어나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반구대란 명칭은 절벽이 있는 산등성의 모습이 마치 앉아 잇는 거북처럼 생겼다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이 암각화는 반구대에서 남쪽으로 1km 가량 떨어져 있는데, 지난 1971년 12월 25일 반구마을 집청전 최경환 선생의 제보로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 일행에 의해 발견되어 우리나라 선사시대 바위 그림 연구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유적으로 1995년 6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이 바위 그림이 있는 절벽은 높이 70여m 가량의 돌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인데 강물과 거의 닿아 있는 부분에 새겨져 있다. 바위 그림의 윗부분은 마치 지붕의 처마처럼 드리워져 있어 바위 그림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위 그림은 주로 높이 3m, 넓이 6.5m의 주암면에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좌, 우 20m에 걸쳐 270여점의 그림이 확인되고 있으나 오후 3시~4시 무렵 햇볕이 들 때를 제외하고는 전체 형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바위 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는 풍습은 세계적으로 구석기 시대 후기부터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를 비롯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서북러시아 해안에 새긴 바위그림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바위그림들은 시베리아 동쪽으로 뻗어 예니세이 강변의 청동기 시대 타가르 문화나 몽골 알타이 지방에도 존재하는데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의 내용은 크게 나누어 고래를 비롯한 바다짐승과 사슴 등 육지동물 그리고 사람, 생활 도구로 나뉘고 있다. 바다짐승은 고래가 가장 많아 60여종을 헤아리고 있고 그 외 물개, 거북 등이 있다. 고래의 종류로는 귀신고래, 범고래, 긴 흰수염 고래, 향유고래, 고래상어 등이 보이고 있으며 고래의 생태로는 물을 뿜는 모습, 해초를 비집고 먹이를 찾는 고래, 파도를 타고 노는 고래 따위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육지 동물은 사슴이 가장 많으며 호랑이, 멧돼지, 들소 등이 있고 사람의 모습은 사냥꾼과 춤을 추는 주술사, 얼굴,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모습 등이 보이며 생활도구 또는 배, 울타리, 작살, 그물, 덫이 그려져 있다.


특히 많이 새겨져 있는 고래는 울산 지방이 일찍이 포경의 근거지인 장생포항과도 관련지을 수 있는데 그 당시 내륙 깊숙이 바다였던 점을 감안할 때 선사시대에는 반구대 일대가 고래잡이 중심지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암각화가 새겨진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고래잡이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장이며 사냥한 짐승들의 재생과 풍요를 빌었던 신성한 제의 장소로 보인다.


이렇게 반구대 암각화는 정확하게 사물을 관찰하여 특징적인 요소를 과감히 강조, 생략하는 기법으로 그려졌는데 선사인의 원초적인 순수한 생명력이 담긴 미술작품으로 오늘날 울산광역시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자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연구는 매우 활발하며 우리 문화의 기원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실측조사를 통한 새로운 내용이 밝혀지고 있어 우리나라가 남북 문화 교류의 시대를 맞아 다함께 공감하는 한민족 대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


출처 : 이문웅교수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로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고,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춤추는 남자의 모습에서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은 인간의 생식능력이 자연의 번식력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옛날 산신제(山神祭) 때에 성기를 드러내고 춤을 추었다는 보고가 있다. 두산대백과)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체 화면에는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동물 그리고 탈을 쓴 무당, 사냥꾼, 배를 타고 있는 어부, 목책, 그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 모습은 떼어내기 수법으로 형체를 표현한 음영화(陰影畵)와 쪼아파기 수법의 선으로 나타낸 선각화(線刻畵)로 나타내었으며 시베리아 암각화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수렵과 어로를 위주로 한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려주는 가장 귀중한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 한 화면에 2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예로서 고고학,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반구대 암각화 실측도 [Res. 2477 x 1046]



울산 반구대 암각화 탁본 (고인돌가게) [Res. 1506 x 835]



[Res. 3072 x 2304]



[Res. 2657 x 1895]



[Res. 3176 x 1157]



장석호 박사가 2000년 반구대 암각화를 실측한 뒤 색채를 그려넣은 도면

장 박사는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중간 단계 그림들이 최소 55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새겨졌다고 했다. 몇몇 그림들은 이보다 더 오래 전에 그려졌다는 설명이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65마리의 고래가 새겨져 있다. 고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11종 이상의 고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두 척의 배가 한 마리의 고래를 잡는 모습은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울산 암각화 박물관의 소개글


1970년 12월 24일 울주지역 불교유적조사를 실시하고 있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원효대사가 머물었던 것으로 알려진 반고사지(盤皐寺址)를 찾기 위해 반구대 마을을 방문하였다. 이때 마을주민 최경환씨의 안내로 천전리 각석을 발견 국내 최초로 암각화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듬해 1971년 12월 25일 문명대, 김정배, 이융조 교수 등이 천전리 각석을 방문하였다가 마을주민 최경환, 손진봉씨의 도움을 받아 사연댐 상류지역의 바위면을 조사하다가 반구대암각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전국에 걸쳐 암각화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약 20여 곳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암각화는 바위그림 중에서도 특히 새겨진 그림을 지칭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암채화(바위에 채색된 그림) 유적이 발견된 적이 없어 바위그림과 암각화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암각화는 자연바위에서 뿐만 아니라 고인돌이나 선돌과 같은 거석 유구나 제단시설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알아보면, 암각화가 단순히 바위에 표현된 모든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바위에 행해지는 민간신앙의 흔적이나 불상, 신상 같이 고등종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을 바위그림이나 암각화라는 용어보다는 마애불, 금석문, 각석, 조각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암각화는 문자 출현이전, 선사시대에 제작된 바위그림 중에서 새긴 그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암각화는 매장문화재 연구를 통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선사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종교 관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징·인지고고학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


울주 대곡리 암각화 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진 주요 암면의 크기는 너비 약 10m 높이 약 3m이며, 좌우에서도 10여개의 암면에서 형상들이 발견되고 있다. 새겨진 형상들은 크게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도구와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특히 동물그림들은 생태적 특징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다. 바다동물로는 고래, 거북, 물개, 물새가 확인되며, 육지동물로는 사슴, 멧돼지, 호랑이, 여우, 늑대, 족제비 등이 새겨져 있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매우 사실적인 포경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 선사시대 고래가 새겨진 유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유적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국제학계에 소개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울산과 동남해안 일대의 패총유적에 포함된 동물유체 분석결과와 울산만 고(古)환경 연구 등에 따르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제작의 중심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 3,500년 전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전리각석에는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 추상적인 문양들 위로 신라시대행렬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의 세선화가 있으며, 신라시대 명문등이 덧새겨져 있다.


천전리암각화가 각석(刻石)으로 불리는 것은 발견당시에는 암각화보다 신라시대 명문에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암면의 전면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형태를 볼 때 마름모꼴, 원형의 둥근 무늬, 물결무늬 등 형상들이 서로 연관 반복된 것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일종의 장식무늬로 여겨진다. 암면 아랫부분은 신라시대 세선화와 명문으로 인해 암각화가 대부분 훼손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선화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그어서 새긴 그림이다. 암면에서 식별이 가능한 그림은 말을 끄거나 타고 있는 인물상, 돛을 단 배, 말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며, 용 그림도 발견된다.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乙巳), 기미(己未)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짐작된다. 명문은 크게 둘로 나눠져, 법흥왕(法興王)의 동생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이 을사년(525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只沒尸兮)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출처 : 울산 암각화 박물관




반구대 암각화 탁본




실제로는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그래서 사진 위에 채색을 해서 올렸습니다... 

파란색은 고래잡이 배' 입니다... 배 위에 빨간색은 노를 젖는 사람입니다... 아랫 사진은 중앙 부분의 확대 사진 입니다...
두 척의 배가 고래를 향해 노를 저으며 다가 갑니다... 긴 창을 든 사람이 뱃 머리에 서 있습니다...
7000년 전 선사시대...울산의 고래잡이 장면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주요 형상 해설


반구대 그림_1) 상단에 두 손을 얼굴에 모으고 춤을 추는 주술사의 모습과 그 아래 새끼를 업은 듯한 귀신고래와 왼쪽에 거북의 모습 그리고 U자형의 그물에 갇힌 호랑이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반구대 그림_2) 왼쪽에 줄무늬의 호랑이와 오른쪽에 점박이 표범이 표현상의 세밀함을 보여준다. 그 아래 배를 타고 바다에 나아가 2척의 배로 선단식 고래잡이 하는 모습과 표범꼬리에 걸쳐진 범고래 모습이 보인다.


반구대 그림_3) 왼쪽에 울타리에 갇힌 동물, 고래에 접근하는 배의 모습. 여러 형상의 고래 가운데 오른쪽의 고래는 날카로운 작살을 맞은 모습을 새겨 넣어 선사인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반구대 그림_4) 팔 다리를 펴고 춤을 추는 주술사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 손가락 발가락이 과장되어 묘사되어 있는 주술을 행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왼쪽 그림은 고래와 배 따위를 새기다 중지한 듯한 형상이다.


반구대 그림_5) 꼬리가 긴 족제비, 뿔 달린 사슴, 줄무늬가 있는 사슴이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듯한 모습. 줄무늬 호랑이가 각각 다른 구도로 겹쳐 새겨져 있어 오랜 기간 동안 덧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반구대 그림_6) 앉아있는 듯한 호랑이 모양 같지만 실은 호랑이가 사냥꾼에 의해 살해되어 쓰러져 내장이 밖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과 오른쪽에 날개를 펼치며 물고기를 잡으려는 물새의 모습이 보인다.


반구대 그림_7) 식도 등 내장 기관이 투시되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가 꼬리를 치켜세우고 달려가는 역동감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꼬리 위에 동그란 모양은 사람의 얼굴이다.


반구대 그림_8) 등뼈 부분의 골격이 크게 강조되어 역동감과 유연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호랑이의 모습. 그 아래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과 고래에 접근하는 배의 모습이 보인다.


반구대 그림_9) 뿔 달린 사슴, 노루를 겨냥해 활을 쏘는 사냥꾼 뒤로 귀를 쫑긋이 세운 멧돼지의 모습에서 사냥터가 아니라 사람, 동물이 어우러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선사인의 생활상이 느껴진다.


반구대 그림_10) 위의 역삼각형 사람 얼굴은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적 목적으로 새겼다.

그 아래 몸통을 나누듯 줄무늬가 그어진 고래도 새겨져 있다.



출처 : 울산다움









반구대암각화 - 문화유산채널  [ 추가영상1,  반구대암각화가 품은 비밀 <1> <2> <3> ]




20130801목 KBS 파노라마 한반도 문명기원 탐사 2부 바다를 품은 바위, 반구대 암각화





역사채널e - 반구대 암각화






참고 : 반구대 암각화의 표현 기법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소개




암각화의 형상분류




암각화의 새김법과 특성




암각화의 개별 형상


























암각화 형상의 변화 [Res. 1600 x 913]





경주국립박물관의 암각화 복제품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모형 - 한국관광명품 제 6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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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 울주군 관광, 울산 암각화박물관, 울주군 반구대암각화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