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UDIO

Full Range - 풀레인지 스피커의 재미와 매력

 

 

 

오디오를 좀 했다고 하는 사람치고 서브시스템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오디오 좀 했다고 하는 것은 오디오에 입문하고 맹렬하게 바꿈질해가면서 메인 시스템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상호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엄연히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러한 양립 불가능성에 대한 대안으로 서브시스템을 꿈꾸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거창한 이유만이 서브시스템을 꿈꾸게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편하게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서브를 꾸미기도 한다.

 

황홀한 고역의 뻗침과 자연스런 배음에 바위 돌처럼 단단한 저역을 갖고 싶은데, 사실 해보면 이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클래식 바이올린을 들을 땐 실크 같이 따뜻한 촉감을, 재즈 색소폰을 들을 때는 쿨한 느낌의 금속성 질감을 원하는 것이 오디오 애호가들의 공통된 심사가 아닌가 싶다. 이게 어디 가능이나 한 얘긴가 말이다. 이런 이유로 서브시스템을 꿈꾸고 실제로 꾸미기도 하는 것일 것이다. 메인 시스템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색다름에 대한 갈망의 표현인 것 같다.

 

몇 번이고 서브시스템을 갖추었다가 매번 이러저러한 이유로 충분히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없애곤 했었다. 일단 사무실에서 두 번 정도 시도해봤는데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안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서브 없이 지내다가 작년 이맘때쯤 내 방이 따로 생기게 되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거실에는 메인 시스템, 내 방에는 서브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풀레인지로 서브시스템을 꾸밀 때 경험한 풀레인지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 보고자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풀레인지의 매력

 

우선 자연스런 소리를 꼽을 수 있다. 네트워크가 없고 대체로 가벼운 진동계를 갖는 구조로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음상이니 사운드 스테이지니 이런 것 따지지 않고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 곤두세우고 비평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고 편하게 음악에 취할 수 있게 해준다. 

 

풀레인지는 대체로 음압이 높아서 소출력 싱글 앰프로 울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실 소리의 퀄러티만으로 따진다면 소출력 싱글의 소리가 제일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에 소출력 싱글이 사용 가능하다는 점도 풀레인지의 큰 장점이다. 반면에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정해진 인클로저가 없기 때문에 유닛에서 좋은 소리를 뽑아낼 수 있는 적당한 평판이나 인클로저를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풀레인지로 서브를 구성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우선 정해야 할 문제는 과연 그 많은 구경 중에 몇 인치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구경이 크면 저음이 좋은 대신 고음이 적고, 구경이 작으면 고음은 아주 좋은데 저역이 너무 허전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유닛 구경을 8인치와 10인치로 정하고, 유닛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구한 유닛은 독일제 사바 6x9라 불리는 타원 유닛이었다. 3인치 트위터가 장착된 모델이었는데, 풀레인지로 사용해도 무방할 만큼 고역도 나와 주었다. 이 유닛은 아주 운이 좋게도 콘지, 프레임 등 동일한 유닛인데 알니코와 페라이트로 자석만 다른 것을 비교할 기회가 있었다. 

 

들어본 소감은 누구라도 옆에 놓고 비교해 보고는 절대 페라이트로 된 유닛을 사지 않을 것 같았다. 페라이트 유닛은 힘이 있지만 거칠고 지저분한 고역을 들려주었다. 왜 사람들이 알니코 알니코 하는지를 실감하게 해준 비교시청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페라이트 유닛이 나쁘고 알니코 유닛이 무조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중에 풀레인지라고 돌아다니는 유닛 중에는 풀레인지가 아닌 우퍼가 풀레인지로 둔갑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탠토리안이다. 8인치든 10인치든 들어보면 소리는 나름대로 질감이 있어서 남자 보컬을 맛깔 나게 울려주지만 구경에 비해 고음이 적다. 족보를 따져 보면 풀레인지가 아니라 우퍼였기 때문이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디 우퍼로 설계된 것은 고역 특성이 풀레인지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트위터나 3-4인치의 소구경 유닛을 구해서 2웨이로 구성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미국제, 영국제, 독일제 풀레인지를 사기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귀동냥을 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감을 잡아 갔는데 각기 장점과 매력이 있지만 그중 독일제 풀레인지가 필자 귀에는 제일 가깝게 다가왔다. 독일제와의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웨스턴 755A는 지금도 가장 갖고 싶은 유닛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칼날 같은 예리함 - 텔레풍켄

 

독일제 풀레인지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텔레풍켄일 것이다. 빨간 배꼽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빨간 배꼽이 아닌 것들도 많다. 까만 배꼽도 있고 무 배꼽도 있다. 무 배꼽이 뭐냐면 아예 빨강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꼽이 없는 경우다. 빨강 배꼽이라고 해도 초콜릿 색깔부터 주황색 배꼽까지 다양하다. 

 

가격도 적당해서 사용자가 많은데 필자의 경우는 텔레풍켄 특유의 고역 착색 때문에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스펙트럴 프리앰프를 연상시키는 칼날 같은 예리함과 깔깔함이 고역에 배어 있다. 그래서 10인치 정도 되는데도 고역이 별로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고 바이올린이 독특한 음색으로 표현된다. 여자 보컬과 바이올린의 경우 특히 이 착색 때문에 이 유닛에 대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필자는 이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름의 매력이라는 것은 인정해 주고 싶다.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유닛보다 고역이 더 나오는 유닛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높은 중역대와 낮은 고역대에서 피크(산)를 만들기 때문에 고역이 위로 뻗는다고 느끼는데 실은 비슷한 인치의 필드 스피커에 비해 고역이 덜 나온다. 8인치나 10인치로 구사한다면 고역이 부족하다는 느낌(?) 없이 칼칼한 음색의 텔레풍켄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클랑필름(알니코)과 텔레풍켄을 비교해보면 이렇다. 텔레풍켄은 빨간 립스틱에 하얀 컴팩트, 짙은 눈화장을 한 요염한 20대 여자라면, 클랑필름은 화장을 한 듯 안한 듯한 30대 세련된 여자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스타일이 좋은지는 각자의 취향이 아닌가 싶다.

 

텔레풍켄과 유사한 그레이드의 유닛으로는 이소폰이 있다. 텔레풍켄보다 가격은 약간 낮지만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납품을 하고 하는 관계인지라 따지고 보면 이소폰이나 텔레풍켄이나 다를 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이런 것으로 가격이 매겨지는가? 이소폰은 역시 이소폰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약간 가격이 낮다. 좋은 값에 텔레풍켄에 버금가는 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이소폰을 추천할 만하다.

 

이소폰 다음으로는 사바를 꼽는다. 모델 전부를 들어보진 않았지만 고역이 순하고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운 듯하면서 소박한 느낌을 주었다. 같은 독일제지만 텔레풍켄과는 상당히 다른 음색을보여주었다. 필자는 북구의 음울하고 침침한 날씨를 연상케 하는 사바의 소리를 좋아한다. 마치 스펜더의 음울한 음색을 연상시켜서 음악에 취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외에도 레베옵타, RFT, 비고(WIGO-위고라고 읽는데 ‘비고’라고 발음하는 게 맞다) 등 좋은 독일 유닛들이 다양한 가격대 별로 있으니 텔레풍켄만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천국과 지옥 - 클랑필름

 

보통은 텔레풍켄보다 클랑필름을 가격·음질면에서 더 고급 유닛으로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처음 접한 클랑필름은 초기형으로 알니코 자석이 타원이 아닌 원통형인데, 뒷부분이 각이져 있고 고정 볼트가 자석 뒷면에 있다(그림 5). 10인치 알니코 유닛이었다. 콘지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아서 좋은 값에 구했는데 이 유닛을 들어보고는 클랑필름이라는 이름을 각인하게 되었다. 10인치인데도 초고역까지 나오지는 않지만 높은 중역대까지 디테일과 뉘앙스가 살아나는 자연스런 소리를 내주었다. 10인치고는 저역이 약간 부족한 듯했으나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후에 같은 프레임에 같은 콘지에 동일한 유닛인데 타원형의 둥근 알니코 자석이고 자석 뒷면이 볼트가 없고 각이 없이 둥그스름하게 마무리되어 있으면서 VAC라고 자석 옆면에 마크가 찍혀 있는 후기 모델(그림 9의 오른쪽)을 빌려서 같은 장소에서 비교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저역이나 소리의 에너지는 신형이 나았으나 고역의 디테일 뉘앙스에서 구형에 비해 전혀 음악적이지 못했다. 같은 유닛인데 이렇게 소리가 극과 극으로 다를 수 있는가 싶었다. 후기형을 빌려준 지인도 필자와 같이 초기형과 비교해서 들었는데 후기형은 다음날 바로 장터에 매물이 되어 나가게 되었다.

 

같은 알니코 자석인데 자석 형태가 다르다고 이렇게 다른 소리가 날 수 있는가를 놓고 며칠을 고민했다. 페라이트와 알니코라면 소리를 이해할 수 있지만 같은 알니코인데 어찌 이리도 다를 수 있나 싶었다. 콘지 상태에 따른 차이라고 하기엔 후기형은 너무 완벽한 상태였고, 초기형은 수리가 잘되긴 했지만 서너 군데 이상 손상된 것을 때운 것이니 그것도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게 이유라면 멀쩡한 유닛을 손상시켜 수리해야 한다는 얘긴데 말이 되질 않았다.

 

 

 

나비댐퍼와의 만남

 

무조건 초기 것이라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 황당한 생각도 해보았다. 이런 고민을 계속하다가 우연히 스피커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기존의 스피커 구조와는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흔히 스파이더(Spider)라고 부르는 댐퍼가 보통은 원형 주름으로 되어 있는데, 이 초기형 클랑필름은 원형 주름 형태가 아니었다. 깔때기 모양의 콘지와 보이스 코일이 감겨 있는 보빈 접합부와 유닛의 프레임 사이에 위치해서 유닛이 밑으로 처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원만한 왕복운동을 하도록 잡아주게 하는 것이 댐퍼의 역할이다. 

 

보통의 유닛들은 호수면에 돌을 던지면 원형으로 파동이 형성되는 모양으로 이 댐퍼가 되어 있다(그림 9의 왼쪽). 그런데 초기형 유닛들은 이런 주름댐퍼를 채택하지 않고 베이클라이트라는 단단하면서 강성이 있는 재질을 나비 날개 모양으로 찍어서 보빈과 콘지의 접합부를 프레임에 고정하게 만들었다(그림 6). 요즘은 전자회로 기판으로 글라스에폭시를 사용하는데 예전에는 베이클라이트라는 재질을 사용했다.

 

초기 TR 리시버를 열어보면 노란색 기판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베이클라이트다. 베이클라이트는 열에도 강하고 강성이 뛰어난 반면 충격에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단점이 있다. 말로만 듣던 베이클라이트 나비댐퍼(Phenolic Spiders)를 본 것이다. 플라스틱 자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나머지 끝을 손으로 밀거나 당겨보면 작은 움직임은 자유롭지만 움직임이 커질수록 저항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원리가 바로 나비댐퍼 유닛에 그대로 적용된다. 콘의 미세한 전후 운동에는 거의 반발하지 않지만 전후 운동의 폭이 커지면 저항이 커져서 콘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앞뒤로 많이 움직여야 하는 저역 재생은 어렵지만 미세한 진동으로 재생하는 고역 재생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니 고역의 디테일과 뉘앙스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댐퍼가 없는 것이 콘으로는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댐퍼가 없으면 중력에 의해 콘과 보빈이 아래로 쏠려서 왕복 운동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존재다. 나비댐퍼에 비해 주름댐퍼는 상대적으로 큰 진폭의 전후 왕복운동에도 저항이 적다. 따라서 같은 유닛 구경에 자력이 같으면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고, 더 낮은 음을 잘 낼 수 있게 된다. 

 

요즘 스피커와 비교하면 나비댐퍼 유닛은 밀폐형 스피커와 비슷하고, 주름댐퍼는 덕트형 스피커와 비슷하다. 밀폐형은 유닛의 전후 운동이 커질수록 밀폐된 공기를 강제로 압축, 팽창시키는 꼴이 되어 유닛이 앞뒤로 많이 움직이는 것을 억제하게 된다. 결국 저음이 단정하긴 하지만 양은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댐퍼의 차이 때문에 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 못 풀고 끙끙대던 문제 하나를 시원하게 푼 기분이었다.

 

 

클랑필름 초기 유닛을 보면서 필자가 소유한 틸(thiel)과는 정확하게 정반대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유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틸은 롱갭과 숏 보이스 코일을 사용해서 유닛의 전후 스트로크를 최대한으로 늘려서 아주 다이내믹한 음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쉽게 말해 자석의 철심과 보이스코일이 감긴 보빈 사이의 간격이 커서 앞뒤로 충분히 왕복운동할 수 있게 했다. 자석과 코일 사이의 간격이 커서 상대적으로 에너지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유닛 자체의 음압이 낮아져 대출력 앰프를 필요로 한다. 

 

클랑필름 유닛은 숏 갭에 나비댐퍼를 채택했다. 숏갭이라는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닛을 손으로 밀어보면 보빈과 중앙의 철심이 거의 닿아 있는 느낌이다. 거의 빈틈이 없이 자석과 보빈이 닿아 있어서 손으로 유닛을 살살 밀어 보면 스륵스륵 하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런 소리 때문에 멀쩡한 유닛을 고장이 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음악소리, 특히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확인하는데 피아노의 맑은 청명한 음색이 그대로 살아나면 유닛은 정상이다. 왠지 평소에 듣던 피아노 소리와 다르고 저음 건반과 고음 건반 음이 많이 다르고 탁한 음이 나면 보빈과 철심 사이의 틈에 이물질이 낀 경우이므로 수리(청소)를 해야 한다. 사실 주름댐퍼에 배꼽이 있는 구조는 이 간극에 먼지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나비댐퍼에 무 배꼽 같은 경우는 사실상 이 간극이 외부에 노출된 것이나 다를 바 없어서 보관이나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한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이름 - 필드

 

빈티지 독일 유닛을 이것저것 사서 들어보고 방출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즈음 지인(선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소 오디오에 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자주 하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필드 스피커를 한 번 들어보자는 얘기를 했다. 선배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고리타분하다는 소문이나 선입견에 아예 들어볼 기회조차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냐는 얘기도 곁들였다.

 

사실 필자에겐 전부터 필드 스피커가 하나 있었다. 필드인 것은 맞지만 필드 스피커라기 하기엔 좀 어색한 게 필드 스피커가 채용된 오래된 필코 라디오이기 때문이다. 필드 스피커로는 아주 재미난 구조인데 필드 코일을 앰프 전원부의 초크 코일로 사용한다. 필드 코일은 전원부의 전원 평활 기능과 전자석으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작은 몸체에 여러 기능을 넣어야 하기에 나온 발상인 듯하다. 

 

8년 전쯤에 산 것인데 비오는 날 들으면 아주 독특한 매력이 있다. 모든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목포의 눈물’ 이난영 씨 목소리가 되어 버린다. 빗소리와 어우러진 이난영 목소리는 그야말로 매력적이다. 비오는 날 듣고 있다보면 한적한 시골의 전원주택 서재에 앉아서 비에 젖어 초록을 뽐내고 있는 숲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음이 저 아래 밑바닥까지 텅 비어서 무념무상이 되어 멍한 채로 라디오 소리에 취하기도 했다. 필자는 진공관 라디오를 8개 정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느낌을 주는 라디오는 필코가 유일하다.

 

이런 매력은 있지만 정말 SP음반을 튼 것 같은 고리타분한 소리다. 이런 탓에 필드 유닛을 한 번 들어보자는 선배의 제안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난영 톤으로 나온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난영 톤이 아무리 좋아도 매일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어서 별로 흥미가 없었다. 비오는 날 마음이 동하면 필코 라디오를 들으면 되기에 언젠가 나이가 더 들면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클랑필름 후기형의 주인인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바 10인치 필드가 좋은 값에 장터에 나왔다는 것이다. 사진 상으로 상태가 좋아 보이고 값이 아주 좋아서 한번 해보라고 권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사진 확인도 안하고 바로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하다보니 전에 한 번 거래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마무리하고 바로 송금을 했다. 물건을 받아보니 역시 상태가 좋다. 페어가 맞는지 DCR(직류 저항값) 찍어보니 보이스 코일과 필드 코일 모두 너무 정확하다 싶을 정도로 똑같았다. 그러면 뭐하나 들을 수가 없는데…. 

 

필드는 잘 아시다시피 알니코니 페라이트니 하는 영구 자석이 없고 직류를 넣어서 전자석으로 자력을 만든 후에 보이스 코일에 음악 신호를 넣어서 소리를 내는 구조의 스피커다. 전원부가 없으니 팥 없는 찐빵인 셈이다. 이제 전원부를 만드는 일이 문제다.

 

우선 급한 대로 브리지 다이오드로 정류하고 전해 콘덴서 붙여서 직류 전원 장치를 간이로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드 스피커마다 정격 전압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이 사바 필드는 정격 전압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것 알아내는 것도 문제였다. 아날로그 클리닉에 자문을 구하니 독일제 8~10인치는 대략 100V 근처가 정격 전압이란다. 

 

12인치나 15인치는 더 강력한 자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흘릴 수 있는 전류는 한계가 있어서 전압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따라서 12인치 이상의 필드 유닛은 150V 심지어 200V를 넘는 전압을 걸어 줘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 실제로 쾨르팅이라는 14인치 필드 스피커는 약 240V 정도 걸어 줘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 

 

간이 전원부 앞에 슬라이닥스를 사용해서 수십 볼트부터 차례로 올려 가면서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뜨거우면 안 되고 미지근한 온기를 느낄 정도가 정격 전압이라고 한다. 부랴부랴 슬라이닥스를 빌려서 테스트를 해보니 약 100V 정도가 적당하게 온기를 느끼는 전압이었다. 이제 드디어 필드 스피커를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긴장감 속에 첫 소리를 들어보니 기대치를 웃도는 소리가 나왔다. 10인치이기 때문에 높은 고역이 나오지는 않지만 중역이 탄탄하고 바이올린과 보컬을 들어보니 섬세한 여운 처리와 디테일이 상당히 잘 묘사되었다. 솔직히 그동안 10인치 알니코 풀레인지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디테일과 음악적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우려했던 고리타분한 소리가 아니라 해상력이 좋고 디테일이 살아나는 하이파이적인 소리였다. 오히려 이 필드 스피커를 기준으로 하면 알니코 스피커가 고리타분하고 흐릿한 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페라이트 스피커가 알니코에 비해 힘이 좋은 반면에 거친 소리를 내주지만, 필드는 알니코에 비해 힘이 있으면서도 거칠지 않고 섬세한 디테일이 표현되는 그런 소리였다. 사바 10인치 필드는 앞서 클랑필름 알니코 초기형이 그렇듯이 나비댐퍼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나비댐퍼인데 알니코와 필드라는 차이만으로 이런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알니코 VS 필드

 

소리 차이가 알니코냐 필드냐의 차이뿐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남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니코나 페라이트 자석의 자력이 약해진 것을 다시 자력을 불어넣는 ‘착자’라는 작업을 해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력이 약해진 스피커의 자석을 착자한 후 스피커 소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사용기도 접하게 되었다. 착자 전과 후의 음질 변화에 대한 설명이 같은 나비댐퍼인데 알니코와 필드의 차이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착자 전의 좋게 말해 부드럽지만 흐릿하고 지저분했던 소리가, 착자 후에 또렷하고 선명해져서 마치 안개가 걷힌 듯한 느낌이라고 했는데 알니코와 필드 소리가 딱 그렇게 차이가 난다. 

 

결국은 필드는 규정 전압만 걸어주면 설계 당시의 자력을 확보하는데 반해 알니코는 좋은 자석임에 분명하지만 내구성이 약해서 수 십 년의 세월동안 서서히 자력이 약해지고 충격 등이 있었다면 더 많이 자력이 약해질 것이기에 이런 소리의 차이가 나지 않나 생각했다. 물론 필드로 만드는 자력의 특성과 알니코 영구 자석이 만드는 자력에 의한 소리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역시 충분한 자력을 확보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의한 차이일 듯하다. 이런 가설을 검증해보고자 하는 호기심에 한번 착자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과정이 만만치 않고 유닛을 분해해야 해서 참기로 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필자가 필드 소리에 충격을 받고 필드 추종자가 되어 필드 스피커도 어떤지 한번 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던 선배와 전화 통화 중에 필드의 소리에 대해서 흥이 올라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정말 마음이 통했는지 그 선배도 며칠 전에 수원의 모 오디오 동호인 모임에서 8인치 풀레인지 비교 시청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어서 직접 참여하지도 않고 옆에서 무슨 스피커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건성으로 듣고 있었는데 듣던 중에 귀에 하나 쏙 들어오는 소리가 있어서 스피커가 뭐냐고 물으니 그라츠 필드 8인치라고 답해 주었다고 한다. 더구나 누군가가 그것을 판매할 생각으로 들고 나왔기에 바로 돈을 주고 사들고 왔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사바와 한 번 비교해서 들어보자고 했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필드 스피커에 매력을 처음 느끼게 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막히다는 느낌이다.

 

 

나비댐퍼 말고 다른 건 없을까?

 

사바 필드의 경우 부실한 전원부 탓에 웅하는 험이 있는 상태인데도 알니코 나비댐퍼와는 디테일이나 음악적 뉘앙스에서 확실히 한 단계 윗소리를 들려주었다. 같이 비교시청한 지인 하나는 비교 시청 전부터 자신은 풀레인지는 고역이 안 나와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공언했었다. 공언대로 스탠토리안, 알니코 클랑필름 초기형, 후기형 들으면서 ‘역시 풀레인지는 안돼!’라고 연발하다가 사바 필드를 듣고는 풀레인지도 가능하다고 태도를 바꾸었다.

 

필드 스피커를 염두에 두고 찾다보니 역시 필드의 왕이라는 클랑필름 필드 스피커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찾아 나섰다. 보통 우리가 클랑필름 필드 스피커로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텔레풍켄에서 만들어 납품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간이극장(이동식) 시스템의 스피커로 사용되었고, 다수가 클랑필름 유닛으로 칭한다. 

 

제일 먼저 구해진 것이 클랑필름 8인치 필드였다. 정격 전압은 약 95V 정도로 해서 들어보니 고역이 정말 아름다웠다. 내가 지금껏 들어본 바이올린 소리 중에서 가장 사실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아름답게 느낀 바이올린 소리였다. 여자 보컬의 소리도 정말 아름답고 매끄러운 소리였다. 슈바르츠코프의 미성이 생각나는 고역이다. 다만 저역이 양이 좀 적었다. 특히 필자는 평판이 아니라 후면 개방형 인클로저에 수납한 탓에 저역이 평판보다 적었고, 저역을 좋아하는 필자의 취향 때문에 더욱 더 부족하게 느껴졌다. 사실 모두에 풀레인지 중에 8, 10인치 풀레인지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성한다고 했지만 듣다보니 필자의 취향에는 10인치가 맞았다. 

 

8인치를 선배에게 양도하고 10인치를 기다려 행복한(?) 값에 구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일산까지 가서 구해다가 사바 필드와 비교해서 들어 보았다. 같은 10인치인데도 클랑필름 필드는 중고역이 아주 좋고 상대적으로 저역이 양이 적지만, 사바는 탄탄한 중역을 중심으로 저역이 양이 충분했다. 과연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음색이야 회사가 다르니 다를 수 있다지만 하나는 대역이 높고 하나는 낮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심히 두 유닛을 살펴보다가 그 이유가 될 만한 단서를 발견했다. 사바 필드는 나비댐퍼인데 클랑필름 필드는 나비댐퍼가 아니고 배꼽부에 댐퍼를 위치시킨 일명 회오리 댐퍼였다(그림 8). 방식은 비슷하지만 나비댐퍼는 베이클라이트가 나비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프레임 고정부와 콘지 접합부 사이의 길이가 곡선으로 되어서 대략 7-8cm 정도로 길었다. 

 

반면에 배꼽에 위치한 회오리 댐퍼는 프레임 고정부와 콘지 접합부의 길이가 길게 봐야 2cm 될까 말까 했다. 결국 탄성을 가지고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오리 댐퍼는 아주 예민한 움직임에는 유리하지만 나비댐퍼처럼 앞뒤로 많이 움직일 수 없는 셈인 것이다. 그러니 나비댐퍼가 상대적으로 저역을 더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시 또 하나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필드 10인치는 알니코 8인치와 대역이 비슷하다!

 

필드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필자도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나름대로 수긍했다. 실제 들어보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필드는 확실히 알니코에 비해 고역이 더 나는 반면에 저역은 덜 난다. 만약 알니코 8인치 풀레인지가 대역이 적당하다고 느낀다면 필드는 10인치가 대역이 적당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필드 스피커는 거의 주름댐퍼를 채택한 경우가 없다. 대부분 나비댐퍼이거나 회오리 댐퍼, 그도 아니면 니플 댐퍼(텔레풍켄 필드의 경우)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주름댐퍼에 비해 저역 재생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니 필드 10인치는 알니코 8인치와 대역이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왜 틀린 말이냐 하면 필드 스피커 중에 나비댐퍼가 아닌 주름댐퍼를 채택한 유닛이 있는데 그라츠 필드가 그렇다(그림 10). 그라츠 필드 스피커는 필드이면서 나비댐퍼가 아닌 주름댐퍼를 채택하고 있다. 왜 그런고 하고 따져보니 그라츠 스피커는 필드 중에서 상당히 나중에 나온 모델인데, 이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알니코 스피커를 생산하던 시대에 만든 필드 스피커이기 때문인 것 같다. 

 

따라서 그라츠 필드 스피커 8인치를 들어보면 보통의 8인치와 저역 양이나 대역에서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결국 필드 10인치는 알니코 8인치와 대역이 비슷하다가 아니고 나비댐퍼 필드 10인치는 주름댐퍼 8인치와 대역이 비슷하다고 해야 정확하게 맞는 말이 된다. 이 말을 그대로 회오리 댐퍼에 적용하면 ‘회오리 댐퍼 10인치는 나비댐퍼 8인치와 대역이 비슷하다’가 될 것이다. 대역은 필드냐 아니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콘의 앞뒤 움직임을 제어하는 댐퍼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전원부 없는 필드는 배 없는 항구

 

쓸 만한 10인치 필드 두 개를 구했으니 이제 제대로 된 전원부를 구성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우선 자료 수집을 하니 다이오드 정류보다는 정류관 정류가 음질이 좋고, 콘덴서는 MP나 오일 콘덴서가 소리가 좋다고 하는 것이 중평이었다. 실제로 간이 전원부의 전해 콘덴서를 떼어내고 초크와 오일 콘덴서로 바꿔서 들어보니 소리의 결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 음질 차이가 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필드 전원부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공관 앰프의 전원부를 생각하면 딱이었다. B+ 전원을 필드에 공급하는 전원이라고 생각하면 그대로인 셈이니 말이다. 진공관 앰프에서도 전원부에 오일 콘덴서 사용하면 소리가 유연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니 어찌 보면 필드 전원부에서도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전압을 맞추는 것이었다. 진공관 앰프에서의 전원부야 진공관 스펙이 공개되어 있어서 공식대로 하면 적정 전압이 나오지만, 필드 스피커는 필드에 걸리는 전압을 맞춰야 하는데 이게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우선 기초 자료로 필드 코일의 직류저항(DCR)을 재서 회로 설계가 가능한 엔지니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래서 대략 계산 가능한 범위에서 전원트랜스를 주문했다. 필자의 경우 정류관을 유닛(채널)당 5U4G를 하나씩 사용해서 양파 정류하고 스윙잉 초크를 사용해서 초크 인풋회로로 구성하기로 했다. 콘덴서 인풋에 비해 초크 인풋이 소리의 에너지감이나 생동감에서 우월하지만 콘덴서 인풋에 비해 전압강하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트랜스에서 나오는 교류전압이 높아야 한다.

 

센터 탭 기준으로 180V, 170V, 160V, 150V, 140V 이렇게 5개의 탭을 낸 전원 트랜스를 주문했다. 사바 필드와 클랑필름 필드 10인치를 모두 구동해야 하기에 탭을 다양하게 했다. 자작 안한 지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다시 시작하려니 이것저것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전원부를 만들어 보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우선 전원트랜스는 일신 전기에 스윙잉 초크는 누설 자속이 적다는 태창(8H, 200mA)에 주문했다. 일반 초크(8H, 180mA)는 DHT 사운드에서 구했다. 서브시스템은 포노 전용이고, 작은 방에서 시청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트랜스들을 누드 상태로 해서 전원부를 만들 수는 없었다.

 

최대한 누설 자속을 줄여야겠기에 여기저기에 자문을 구했다. 우선 자속의 차폐에는 트랜스의 코아보다 좋은 게 없다는 게 중론이어서 대형 코아를 사다가 잘라서 트랜스들을 감싸보기로 했다. 청계천의 코아 파는 집에 가니 대형 코아가 있긴 한데 트랜스를 감쌀 만한 적당한 크기가 없었다. 코아를 만드는 집을 찾아가 보라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 갔더니 코아를 만들면서 남은 자투리들이 많았다. 제일 좋다는 지코아로 해서 한 무더기를 사가지고 왔다.

 

막상 사오기는 했지만 네모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트랜스와 트랜스 케이스 사이에 들어가게 만들어야 하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손에 물집이 생겨 가면서 코아 철판을 재단하고 절곡해서 트랜스를 집어넣는 박스를 만들었다. 이제는 혹시라도 트랜스가 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진공 함침을 해야 했다. 청계천에서 해주는 함침이야 니스에 한 번 담갔다 빼는 것이라서 트랜스 주문할 때 아예 함침을 하지 않은 채로 달라고 했다. 

 

국내 몇 군데 오디오 업체에서 진공 함침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안티폰 연구소에 특별히 부탁해서 진공 함침을 했다. 진공 함침 과정을 보니 함침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진공펌프로 공기를 빼내고 니스를 넣는 함침 과정 이후에 고온에서 다시 구워서 트랜스 속에 남아 있는 신나 성분을 완전히 말려 버리는 처리까지 해야 완벽하다고 했다. 진공 펌프로 공기를 빼내면서 니스를 넣어야 코일 사이사이까지 니스가 침투하고 그걸 다시 고온으로 구워서 신나 성분을 완전히 날려 보내야 코일 사이사이에 있는 니스가 완전히 굳게 된다는 것이다.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한 셈이다. 

 

이렇게 처리되어 나온 트랜스를 코아로 감싸고 다시 트랜스 케이스에 넣은 후 에폭시 몰딩을 했다. 에폭시 몰딩을 할 때에도 여러 주의점들이 있다 우선 철심 코아가 케이스의 철과 직접 닿게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에폭시 수지에 경화제를 용량만큼만 넣고 충분히 저어준 후 부어야 한다. 경화제 양이 많으면 굳어지면서 열이 지나치게 발생하고, 이 열로 인해 에폭시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트랜스가 채널당 3개씩 전부 6개가 들어가는 관계로 섀시도 만만치 않은 크기로 구해야 했다. 트랜스 수납하고 정류관 박고 오일 콘덴서와 MP 콘덴서를 배치해서 제작을 했다. 실제 필드 스피커에 연결했을 때 원하는 전압이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속에 테스트를 하니 180V 탭에서 클랑필름 필드 10인치가 약 115V가 걸렸고, 사바는 160V 탭에서 97V가 걸렸다. 

 

아날로그 클리닉에서 알려준 팁은 콘덴서 용량을 늘려 가다가 험이 안 나는 시점에서의 콘덴서 용량값을 기준으로 하고, 원하는 전압보다 약간 낮게 나오는 경우는 스윙잉 초크 앞에 소용량의 콘덴서를 병렬 연결하면 약간의 전압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스윙잉 초크 앞에 콘덴서를 달아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바와 클랑필름 모두에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셀렉터를 달아서 180V, 170V, 160V 세 가지 탭을 오스 오디오에서 구한 셀렉터에 연결해서 클랑필름을 들을 땐 180V 탭이나 170V 탭에 놓고 사바를 들을 땐 160V 탭에 놓고 들으면 되도록 만들었다.

 

실제 제작에서는 스윙잉 초크 다음에는 8㎌(4+4) MP를 사용했고, 초크 다음에는 6.5㎌(2.4+2.1+2)를 사용했는데 2.4㎌와 2.1㎌를 MP로 하고 2㎌만 오일 콘덴서를 사용했다. 만들자마자 선배가 와서 들어 보더니 유연한 맛이 부족하고 약간 날카로운 느낌이 있다하여 최종단의 콘덴서를 2.1㎌ 하나만 MP로 하고 2㎌ 두 개를 오일로 바꾸었다. 역시 예상대로 부드럽고 유연한 소리로 변했다.

 

 

필드 - 그 오묘한 변화

 

간이 전원부에 슬라이닥스 연결해서 필드 스피커를 들을 때부터 느낀 점인데 필드가 참 재미있는 스피커다. 슬라이닥스를 돌려서 전압을 올리면 고역이 더 뻗으면서 음에 열기가 느껴진다. 반대로 전압을 낮추면 좋게 고역의 뻗침이 줄면서 소리가 좀 힘이 없어지면서 두루뭉술하게 변한다. 제대로 만든 전원부를 붙여서 셀렉터를 돌려 가면서 해봐도 역시 전압을 올리면 고역이 뻗고, 내리면 고역이 줄면서 두루뭉술해진다. 하나의 스피커로 다양한 소리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클랑필름이나 사바나 똑같다. 

 

앞에서 필드와 알니코의 소리 차이의 원인을 고민하면서 알니코가 세월의 흐름 때문에 자력이 약해진 탓이 알니코와 필드의 소리차이의 주 원인이라고 추정했는데, 필드 스피커에 규정 전압보다 낮은 전압을 걸면 알니코가 자력이 약해진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자력이 떨어진 알니코 유닛을 분해해서 자석만 착자해서 자력의 약화에 의한 음질의 열화라는 추정을 착자라는 과정 없이 간접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잠깐 생각을 잘못했으면 아까운 알니코 유닛(나비댐퍼)을 분해할 뻔했다.

 

전압에 의한 소리의 변화에 재미를 붙이자 이젠 다른 부분에도 튜닝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이 5U4G 정류관이었다. 현재 사용한 것은 퉁솔 것으로 빔 형태의 블랙 플레이트인데 좀더 나은 것을 찾아보니 고전관으로 U-52라는 게 있었다(그림 14). ebay를 검색해도 매물이 잘 안나오는 것이어서 국내에서 예상보다는 비싼 값으로 2개를 구입했다. 사실 제 정신이었으면 지불할 수 없는 금액이었는데 순간적으로 필드 전원부로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30여 만원을 주고 정류관 두 알을 사버렸다. 받아보니 컵베이스에 항아리 관으로 생김새부터가 만만치 않게 생겼다. 

 

실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하는 심정으로 관을 교체했다. 그런데 소리는 배음이 많아지고 중역이 두툼해지면서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물론 디테일도 좋아지면서 말이다. 한번 꽂은 후 다시 퉁솔로 바꿔 꽂아서 차이를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U-52를 살 때 45 파워 앰프의 정류관인 GZ34 멀라드 메탈 베이스도 같이 샀다. 원래 꼽혀 있는 것은 ‘루비’라고 하는 중국산 몇 천원짜리 관이다. 멀라드 메탈 베이스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1알에 20만원 정도 주었다. 

 

U-52로 재미를 봐서 곧바로 45 파워 앰프의 정류관도 메탈 베이스로 바꿔 보았다. 사실 내심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왜냐하면 퉁솔 5U4G도 중간 이상 가는 관인데 U-52로 바꿔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GZ34는 그야말로 제일 싸구려 관에서 최고급 관으로 교체하는 것이니 차이가 더 클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심사인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다소 허망하게 메탈 베이스 GZ34로 바뀌고 소리가 분명 좋아지기는 했지만 앞서의 U-52의 변화에 비하면 절반 정도나 될까 말까 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파워 앰프 정류관 바꾼 것이 훨씬 더 큰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도 도대체 이 필드 스피커가 무엇이기에 전원부 정류관 살짝 바꾼 것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욱 더 우스운 것도 파워 앰프 파워코드보다 필드 전원부 파워코드 바꾼 것이 소리에 훨씬 더 많은 변화를 준다는 점이다.

 

 

필드의 황제 - 필드 유러딘

 

주로 간이극장용 시스템으로 쓰였던 클랑필름 필드 스피커가 이렇게 예민하고 디테일한 소리를 내준다면 필드의 황제라는 필드 유러딘은 과연 어떤 소리일까 하는 호기심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드디어 필드 유러딘을 들을 기회가 왔다. 지인의 선배 되시는 분이 필드 유러딘을 가지고 계시다고 해서 부랴부랴 지인이 선배 댁을 방문할 때 같이 동행해서 필드 유러딘을 듣게 되었다. 

 

잘 아시다시피 유러딘은 혼이 장착된 드라이버가 500Hz 이상의 중역과 고역을 담당하고, 저역은 역시 필드 15인치 우퍼가 저역음 담당하는 구조다. 따라서 500Hz 이하의 우퍼보다는 500Hz 이상을 담당하는 필드 드라이버의 특성이 전체적인 소리 특성을 좌우하게 된다. 사실 필자도 그때까지 필드 드라이버 소리는 한번도 들어 보질 못했다. 

 

궁금함과 호기심에 들어본 필드 유러딘 소리는 중역과 고역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한 20여 분을 듣자 강렬하다 못해 귀에 약간의 피로감까지 느껴졌다. 분명한 것은 아주 디테일이 뛰어나고 모호함이 일절 없는 선명하고 선열한 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들어본 어떤 스피커보다 케이블이나 기기 변화에 대해서 아주 예민하게 차이를 드러내주는 스피커였다. 특히 필드 드라이버는 중역이 강렬하고, 귀 속까지 쏙 박히는 음이다. 필자에게는 다소 강한 듯한 느낌이지만 분명 매력이 있는 음이다.

 

나중에 안 것인데 유러딘의 경우 필드, 알니코 안 가리고 중고역을 담당하는 드라이버의 음압이 다소 높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알텍이 그렇듯이 극장이나 강당같이 넓은 공간에서 사용하던 스피커이기 때문이란다. 중역의 강렬함이나 고역의 선열함에 비해 저역의 질은 좋지만 양이 다소 부족한 듯했다. 

 

필드 유러딘의 저역은 양은 많지 않았지만 질은 알니코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알니코 유러딘의 저역이 다소 뭉치고 흐릿한 느낌인 반면, 필드 유러딘의 저역은 아주 절도가 있고 단단하며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펀치로 치자면 알니코 저역은 강하게 날아오는 것 같은 펀치에 맞았는데 실제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은 느낌이고, 필드의 저역은 살짝 잽처럼 날아왔는데 맞았을 때 충격이 의외로 큰 경우라고 하겠다. 필드 유러딘은 결코 푸근한 빈티지의 맛이 아니다. 선명하고 강렬한 중고역에 단단한 저역을 갖춘 스피커다.

 

유러딘을 평탄한 대역으로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서는 드라이버의 음압을 조금 낮춰 줘야 할 것 같다. 알니코 유러딘의 경우는 네트워크에 드라이버 유닛의 음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간단하게 가능하지만, 필드의 경우는 따로 제작해서 사용해야 하기에 간단치 않다. 필드의 황제라는 별명에 전혀 손색이 없는 소리였지만 아직 필자의 취향으로는 다소 강렬한 음으로 기억이 되었다. 아직은 귀가 덜 트였는지 페이퍼 콘지의 필드 소리가 가장 잘 귀에 와 닿는다.

 

 

필드 왜 어려운가?

 

알니코에 비해 필드는 분명 한 차원(‘등급’이 아니다) 높은 소리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분명한 것은 구하기도 어렵고 운용도 알니코에 비해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우선 상태 좋은 필드 스피커를 만나기가 어렵다. 필드 스피커가 만들어진 시기가 주로 1930~40년대이기 때문이다. 50년대 이후엔 알니코가 그 자리를 다 차지해 버렸다. 따라서 알니코보다 10~20년, 심지어는 30년 이상 오래되었으니 그만큼 상태 좋은 경우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의 난관은 설령 상태 좋은 유닛이 있다 해도 좌우 페어를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스테레오의 시작을 50년대 말로 보면 알니코 유닛들은 대부분 스테레오로 출시되어서 페어로 돌아다니지만, 필드 유닛들은 모노 시대에 만들어져서 페어란 개념이 사실상 없어서 페어를 따로 맞춰야 한다.

 

페어를 맞추는 과정도 알니코에 비하면 만만치가 않다. 알니코의 경우 외관이 동일하고 보이스 코일의 임피던스가 같으면 페어로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필드의 경우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일단 보이스 코일의 임피던스가 같은 것을 고른 후에 필드 코일의 임피던스를 체크해서 필드 코일의 임피던스도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량이 많지 않은데 보이스 코일과 필드 코일의 임피던스가 동시에 맞아야 하니 참 확률로 따져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가장 기막힌 것은 모양이 같고, 필드 코일 임피던스도 똑같은데 보이스 코일의 임피던스가 다른 경우다. 한마디로 애석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내가 아는 지인은 필드가 페어로 ebay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8인치를 하나씩 구했는데 모양이 똑같은 8인치 클랑필름 필드 8개를 구하고 나서야 겨우 짝을 맞췄다고 한다. 눈물나는 얘기다. 나머지 6개는 개 값에 팔든지 짝 맞출 때까지 끼고 살아야 한다. 

 

페어 맞출 때 보이스 코일은 정확하게 임피던스가 같아야 하고, 필드 코일의 경우는 10% 오차까지는 정상으로 봐야 한다. 좀더 정확하게 필드 유닛의 페어를 맞추려면 직류 임피던스로는 부족하고 LCR 미터로 정확한 헨리(H) 값을 재서 짝을 맞춰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직류 저항값에서부터 차이가 나면 헨리 값은 찍어 볼 필요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것 하나 찍어 보자고 기십만원 하는 LCR 미터를 살 수도 없지 않은가?

 

보통 독일제 유닛하면 15(16)Ω만 있는 줄 아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16Ω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4Ω ,8Ω도 생각보다 많다. 비오노르의 우퍼로 유명한 405도 풀레인지로 쓰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16Ω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8Ω이다. 비오노르 네트워크를 보면 405 유닛을 병렬로 연결해서 네트워크의 4Ω 단자에 연결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405유닛은 8Ω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필드 유러딘의 경우는 네트웍의 임피던스가 200Ω짜리도 있다. 200Ω이나 그 이상으로 네트워크를 만든 이유는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파워 앰프와 스피커의 거리가 긴 경우에 파워 앰프 신호의 손실을 적게 하기 위해서 고 전압으로 전송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초기 독일제 파워들 중엔 아웃 임피던스가 200Ω짜리가 적지 않다.

 

이런 짝 맞추기의 어려움 외에도 필드는 앞서 언급했듯이 전원부가 있어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양질의 전원부를 갖추어야 하는데 대부분 8, 10인치 유닛들은 오리지널 전원부가 없는 상태로 돌아다닌다. 이것을 적정 전압을 찾고, 전원부를 만드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필드는 분명 이런 어려움을 잊게 할 만큼의 보람을 소리로 느끼게 해준다. 

 

필드에 입문하고자 하는 애호가가 있다면 우선 가격이 저렴하고 운용이 쉬운 그라츠 필드 8인치를 권하고 싶다. 유닛만 따지면 약 30만원 정도면 페어로 구할 수 있다. 필드 치고는 후기에 만들어진 탓에 나비댐퍼는 아니지만 풀레인지로 쓰기에 소리나 대역이나 안성맞춤이다. 저역도 주름댐퍼라서 상당히 나오고 고역도 상당히 뻗는 편이다. 우선 그라츠로 필드를 맛본 후에 차근차근 시작해 보면 필드가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다.

 

 

 

풀레인지의 운용

 

알니코든 필드든 유닛만 돌아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클로저가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는 방의 크기 때문에 평판을 만들어서 수납해 보지는 않았다. 다만 서너 가지 정도의 인클로저를 사용해서 이렇게 저렇게 조합을 실험해보았다. 독일제 유닛에 한정한다는 전제로 평판이 가장 자연스럽고 풀레인지다운 소리를 들려주었고, 사정상 평판을 할 수 없다면 인클로저를 사용해야 하는데 덕트형이나 밀폐형은 다소 실망스런 결과를 보여 주었다. 특히 저역이 지저분해지는 특성을 보여주었다.

 

후면 개방형의 경우는 인클로저의 앞뒤 깊이가 깊은 것은 덕트형과 유사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후면 개방형의 경우도 가능한 한 앞뒤 깊이를 얕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소리가 깔끔하고 저역도 단정했다. 독일제 풀레인지에 국한한다면 가볍고 단단한 자작나무가 좋다는 것이 중평이고, 자작나무가 아니라면 차라리 가벼운 칩보드를 쓴 것도 나쁘지 않다고들 한다. 많이 사용하는 미송 합판은 독일제와는 왠지 안 어울린다는 앞선 경험자들의 조언도 있다. 

 

그리고 아주 두꺼운 재질로 무겁게 하기보다는 적당한 두께의 합판을 사용하고 보강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그림 15). 보강도 좌우 대칭으로 하기보다는 약간 엇갈리는 듯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인클로저를 제작할 때 평판이냐, 후면 개방형이냐, 평판이라도 나무 재질이 무엇인가 크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많은 변수가 있다. 경험자들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자기가 직접 해보는 것 외엔 뾰족한 해답이 있을 수 없다. 

 

하이엔드 시스템의 경우 공간의 중요성은 아주 중요한데 8, 10인치 풀레인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제한된 대역을 재생하기 때문에 인클로저가 소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인 것 같다. 3웨이의 대형 하이엔드 시스템의 문제는 시청공간에 귀착되고, 풀레인지의 문제는 인클로저에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풀레인지에 매칭할 앰프는 자연스러움과 배음을 중요시한다면 45나 2A3, 6BQ5 싱글을 권하고 싶다. 필자는 소박한 음을 좋아해서 45를 선택했는데 다소 화려한 고음을 원한다면 2A3도 좋을 것 같다. 깔깔한 질감을 원하면 경우는 PP가 적당한데 보통 6BQ5를 PP로 구성한 앰프들을 많이 사용한다. 좀더 굵은 톤을 원한다면 6V6도 좋다. 좀더 적극적으로 독일제 앰프로 가고자 한다면 이동용 영사기 앰프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그림 16). 보통 EL91이나 EL95 PP가 많은데 독일 소리다운 맑고 청명한 음이 일품이다.

 

 

 

마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경험한 풀레인지에 대한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하는 의미로 글을 쓰게 되었는데 주위의 지인들은 대부분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말리는 분위기다. 누구나 쉽게 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필드 스피커라는 생소한 분야를 소개한다는 것이 그 첫째고, 둘째는 그렇지 않아도 물량이 적어 구하기 어려운 필드 스피커를 더욱 구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좋은 소리가 나는 유닛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무조건 옛날 것이라고 해서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아보고 정성을 기울여 돌봐줘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고민하고 궁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좋은 소리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필드 스피커는 알니코 스피커에 비해 소리를 튜닝할 수 있는 요소가 아주 많은 것이 장점이다. 전원부의 정류관, 콘덴서, 파워코드, 배선 등이 그렇고 결정적으로 전압을 높게 걸고 낮게 거는 것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로 바뀐다. 번거로움은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 감에 있어서 손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은 오디오 애호가에게는 행복한 일일 것이다.

 

풀레인지라고는 하지만 그 세계는 넓고도 무궁무진하다. 필자도 그중 일부만을 맛본 것에 불과하다. 풀레인지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작은 바람이다.

 

 

월간 오디오&홈시어터 2005년 8월호

출처 : Full Range - 풀레인지 스피커의 재미와 매력 

 

 

 

 

 

 

 

 

 

 

 

 

'AUD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웨스턴16A혼  (0) 2020.06.07
오디오 판매 카달로그  (0) 2018.03.29
1980년대를 수놓은 오디오 명품들  (0) 2017.05.13
앰프의 역사와 명기  (0) 2017.02.10
추억의 리시버 앰프리파이어  (0) 20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