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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 아베마리아, Ave Maria


AVE MARIA, GRATIA PLENA, / DOMINUS TECUM / BENEDICTA TU IN MULIERIBUS /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 / I  E  S  U  S


"아베 마리아 Ave Maria"는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탄생 예고(수태고지)를 하려고 나자렛의 마리아 집으로 들어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 라고 인사했다는 복음서 내용에서 유래하는 라틴어 표기입니다. 

Ave는 라틴어에서 ‘문안드리다’ ‘인사드리다’라는 뜻이므로, Ave Maria는 ‘마리아님, 문안드립니다’라는 뜻입니다. 

노래에서는 아베 마리아와 아멘이라는 가사만 반복되는데, 이런 류의 성악곡을 보칼리제(vocalise) 라 합니다.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 아베마리아, Ave Maria (Original - Johann Sebastian Bach)



이네사 갈란테는 구 소련 라트비아 공화국 출신으로 소프라노였던 어머니와 테너 가수 였던 아버지로 부터 재능을 물려 받은 성악 가수 입니다! 한마디로 태생부터가 성악가 입니다! 그녀는 리가 오페라 하우스와 카로프 오페라 등 동구권에서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 미국과 캐나다 순회공연을 하며 비평가들로 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1년 라이트비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서 세계무대로의 데뷔를 시작 했습니다!

1992년 독일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에서 파미나 역으로 서방에 첫 선을 보이게 됬습니다!

그로 인해1995년에 발표한 음반 (데뷔)를 통해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라 하면..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며 1551년에 태어나 1618년에 생을 마감하신 이탈리아의 성악 작곡가로 상당히 유명하신 분이시죠~ 그리고 이곡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신 오페라 명곡입니다


물론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와 이곡은 단 0%도 전혀 관련이 없는 곡으로도 유명하고요~

원 작곡가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Vladimir Vavilov)"(1925) 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1551년이 아닌! 1925~1973년 사이의 바빌로프가 살아있던 시절!

바로크 음악 연구가이자 류트 연주자이며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이분이 인지도도 없고 무명에다..뭐 하나 내세울 것 없이 조용히 1973년에 세상을 아주 조용히 떠나셨는데.. 1975년에 소프라노 가수 "이리나 보가체바"씨가.. 무명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가 작곡한 이곡 "아베마리아"를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로 발표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 당시 러시아의 유행이 창작곡들이 대부분 작곡가 불명인 이면 다른 고전 작곡가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인기 없는 무명 작곡가가 아무리 좋은 곡을 작곡해도 인지도가 없으면 묻혀지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바빌로프" 본인이 이곡을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라고 발표했다는 설과 "바빌로프"의 동료가 "이곡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라고 발표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곡이 "카치니가 살아온" 바로크 시대에 나온 곡으로 보기엔 하나도 맞지 않아서. 결국은 들통이 났는데.. 

그래도 워낙 잘 만든 곡이라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95년 이네사 갈란테의 데뷔곡으로 수록되어 "음반" 발매가 되고 엄청난 인기를 얻은 곡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주 오래전 드라마" 천국의 계단" (최지우.권상우 주연) ost로 사용하여 많은 인기를 얻는 곡이기도 하지요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nhQomjsFAg]



"Ave Maria" is a much recorded aria composed by Vladimir Vavilov around 1970. It is a musical hoax generally misattributed to Baroque composer Giulio Caccini. Vavilov himself published and recorded it on the Melodiya label with the ascription to "Anonymous" in 1970. It is believed that the work received its ascription to Giulio Caccini after Vavilov's death, by organist Mark Shakhin (one of its performers on the mentioned "Melodiya" longplay), who gave the "newly discovered scores" to other musicians; then in an arrangement made by the organist Oleg Yanchenko for the recording by Irina Arkhipova in 1987, then the piece came to be famous worldwide. [From Wikipedia]


"Ave Maria"는 Vladimir Vavilov가 작곡한 것으로 1970년경 많이 녹음 된 아리아입니다. 

일반적으로 바로크시대의 작곡가인 Giulio Caccini의 곡으로 많이들 오인되고 있습니다. 

실제 Vavilov는 1970년에 "Anonymous(익명)"라는 이름으로 Melodiya 레이블에 이곡을 출판하고 녹음했습니다. 

이 작품은 Vavilov가 사망 한 후, 오르간 연주자 Mark Shakhin(실제 Melodiya LP판의 연주자 중 한명)가 이 곡을 Giulio Caccini에게서 받았다고 하면서 카치니의 곡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오르간 연주자 Oleg Yanchenko가 편곡한 것을 Irina Arkhipova가 녹음을 하면서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곡은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 주길 바라는 기도이다. (댓글 중..)


Ave Maria - Vladimir Vavilov - Norie Suzuki




at Summertime Festival 2015, Conductor: Matthias Fletzberger




INESSA GALANTE at the beach - Adagio Albinoni




Casta Diva - INESSA GALANTE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한 곡으로 일약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급부상해서 우리시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운데 한 사람이 된 인물, 그가 이네사 갈란테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널리 알리게 된 이네사 갈란테는(Inessa Galante), 구 소련 라트비아(Latvia) 공화국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름다운 콜로라투라 음성을 지닌 가수였고, 아버지는 극적인 베이스 가수였다. 부모가 모두 노래를 잘했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 그녀의 재능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그녀의 진로는 자연스럽게 가수로 결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의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977년에 마음을 바꾸고 고향 리가에서 음악원에 입학했다. 라헬 슐로프(Rachel Shulov)에게 사사했고 재학 중에 이미 리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했다. 또한 리가를 비롯해서 주변의 동구권 국가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했고 키로프 오페라( Kirov Opera)에서 정규단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모스크바, 키에프, 오데사 등지로 활동영역을 넓히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가수였지만 서방세계로 진출할 수는 없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본인스스로도 안타까워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갈란테는 라트비아 앙상블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에 투어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곳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갈란테의 노래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지휘자인 예후디 메뉴힌(Yehudi Menuhin)과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는 그녀의 놀라운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서방 세계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즉각 성취되지 않았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갈란테는 이렇게 술회한다. “그 당시 두 진영의 벽은 너무 높았어요”. 


기적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1991년, 라트비아 공화국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비로소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 1992년 독일 만하임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역을 처음으로 맡았고, 1993년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페라 '카르멘'에서 돈 호세의 버려진 애인 미카엘라 역을 호연하면서 그녀는 비평가들에게 그리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후 그녀의 오페라 레퍼토리는 20개 이상으로 확대된다.


1994년, 다시 고향 리가에 온 갈란테는 발틱은행의 스폰서로 최초의 음반을 발표했다. 리가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발표된 로컬 디스크여서 아무래도 반응이 국지적인 것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도 이 음반이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손으로  전해지던 가운데 음반 제작자인 어빙 윌슨(Irving Wilson)에게도 들어갔고, 어빙은 곧 갈란테와 만나서 이 앨범에 담긴 내용 그대로 다시 음반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타이틀은 '데뷔(Debut)'로 정했다. 그리고 Campion Records 레이블로 발표했다.


1995년, 이 음반이 발표되자마자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 폭풍이 불었다. 

일약 세계무대에 그녀의 이름이 각인 되었던 것이다. 평범한 재킷을 입고 나온 이 음반이 서방 음악계를 마구 흔들었다. 제작자도 갈란테도 그같은 예상은 하지 못했는데 ---. 그 돌풍은 영국,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극동지역에까지 세차게 몰아쳤다. 예기치 못한 갈란테의 높은 인기는 세계 각국의 음반 판매고를 통해 바로 입증되었다.


1996년 4월 타워 레코드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명가수들의 막강한 레퍼토리들, 즉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초상'(London), 마리아 칼라스의 '라 디비나'(EMI), 제니퍼 라모어의 ‘어디로 날아갈까 (Where shall I fly)'등을 제치고 갈란테의 '데뷔' 음반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라트비아 돌풍이 이렇게 강력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음반은 1999년 네덜란드에서도 10만장 이상이 팔리면서 마침내 음반상 최고의 영예인 플래티넘 디스크(platinum disc)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음반의 인기와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도 쇄도했다.


팡파르 지의 헨리 포겔(Henry Fogel)은 그녀의 첫 음반을 듣고 느낀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내가 이 음반을 듣고 느낀 흥분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독집음반을 명함으로 내밀며, 이렇게 까지 자신만만하게 소개해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또 이런 찬사도 당도했다. “1990년대 후반! 세상은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소프라노가 없어서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갈란테는 제니퍼 라모어와 함께(반주/로스엔젤러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카르멘'에 출연했다. 플로리다 그랜드 오페라, 발티모어 오페라와 디트로이트 오페라에서 '라보엠'의 미미 역, 런던 위그모어 홀과 알버트 로열홀에도 출연했다. 이네싸 갈란테는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종종 네덜란드에서 공연을 가졌고, 그 곳에서 그녀는 스타로서 위치를 굳건히 하였다.


1997년, 에비앙 페스티발(Evian Festival)에 두번이나 출연했고, 그해 7월엔 미국에서 있었던 로스트로포비치 70회 생일 축하 콘서트에 출연했으며, 이때 헐리웃 볼 음악회에도 출연해서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2000년 7월엔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네델란드에서 데뷔 앨범이 플레티넘 디스크 상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콘서트에서 연주했다. 콘서트헤보우의 가을 오페라 콘서트 시리즈에서도 출연하고 있으며, 또한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벤트 가든 로얄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로스 엔젤러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방송 교향악단, 해파 심포니,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원래 그녀의 라트비아 이름은 ‘이네세 갈란테(Inese Galante)’였는데, 독일에서 거주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유리할 것을 기대해서 첫 이름을 이네사(Inessa)로 바꿨다고 한다. 그녀는 뛰어난 동유럽 성악가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유의 발성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비브라토는 아주 작은 폭으로 필요한 부분만 적절히 사용하고, 음을 단단하게 모아 정확한 발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우 극적인 작품을 연주할 때에도 그녀의 가창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음 하나 하나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부분을 노래해도 경직되어 있지 않으며 또 거친 느낌을 주지 않는다.항상 편안하고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가고 유연해서 작품에 깃든 의미가 선명하고 아름답게 전달된다. 갈란테의 음성은 특히 현악기와 잘 융화되는 편인데, 질감이 아주 따스하고 포근해서 오래 듣고 있어도 피로감이 별로 없다.


기교적으로 난해한 작품을 연주 할 때 발성적인 기조가 균형을 지니면서 끝까지 유지되려면 무엇보다도 유연성이 요구되는데,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갈란테의 능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이다. 기교가 뛰어나고 매우 아름다운 음색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노래할 때는 기교에 신경 쓰거나 일부러 아름답게 소리내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싱어(The Singer)’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성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노래하려고 해요. 소리나 소리의 크기에는 집중하는 편이 아닙니다. 내가 주로 의식하는 부분은 빛깔입니다. 그러니 내 목소리의 특징을 말하라면 한마디로 색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출처: 음악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