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화

고려불화대전 - 제2부 '중생의 구제자 보살'



●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水月觀音圖」- 물가의 기이한 바위와 아름다운 풀, 커다란 둥근 두광(頭光)을 배경으로,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속이 훤이 비치는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감싼 모습으로 한 보살이 앉아 있다. 보살의 뒤로 가녀리게 뻗어 있는 두 그루의 대나무, 바위의 한쪽 끝에 놓인 정병(淨甁)과 버들가지는 이 이가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임을 말해주고 있다. 


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물 건너의 언덕 위에는 한 어린 동자가 두 손을 공손히 합장한 채 서 있으니, 이는 관음보살로부터 한 마디 진리의 감로수(甘露水)를 얻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달려 온 선재동자(善財童子)라는 구도자이다. 동자와 보살의 정감어린 시선이 맞부딪치고 이를 상징하듯 커다란 둥근 광배가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았다. 다음 순간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서, 동자는 또 다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수월관음도는 우리 나라에서 아미타도와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진 도상인데, 선재 동자, 암굴, 염주, 공양자, 보주를 든 용, 한 쌍의 청죽 등의 표현은 다른 나라의 수월관음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보타락가산에 살고 있는 관음보살을 선재 동자가 방문하여 청문하는 장면을 소재로 한 도상이 널리 유행하였다. 아마도 의상이 친견했다는 낙산의 수월관음을 도상화한 것이 계속 유행하였던 것 같다.



일본 談山神社(단잔진자)의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 색. 110*57.7cm  일본 談山神社(단잔진자)


이 수월관음도는 여러 수월관음도 중에서도 화려한 금니와 고운 색채가 놀라울 정도로 잘 살아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전체적인 구성은 화엄경 입법계품 가운데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여행을 떠난 선재동자가 28번째 선지식인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대자비의 가르침을 받는 장면이 주를 이루고, 우측 하단에 법화경 관음보살보문품에 등장하는 재난구제에 대한 내용을 나찰귀, 우산을 쓴 사람, 맹수와 독사에 쫓기는 모습, 도적에게 화를 당하는 모습, 목에 칼을 찬 모습,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 화마에 휩싸인 가옥, 배를 젓는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재난을 만났을때 관음보살을 부르기만 하여도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경전 『법화경』「관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은 이번 고려불화대전의 포스터에 메인으로 등장하는 수월관음도이다. 고려불화대전에는 10여점의 수월관음도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두점이 일본 단잔진자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과 아래의 "물방울 관음"으로 불리우는 일본 센소지가 소장하고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멋진 국보급 불화들을 모두 해외에서 소장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서원을 가진다. 

특히 관음보살은 대자대비를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은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선지식을 찾아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혜허(慧虛) 스님의 물방울 수월관음도


일본 센소지(淺草寺)에 소재한 이 그림을 일본에서는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라 불리는데 이는 버들잎을 의미한다.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 색, 142 x 61.5 cm, 일본 센소지(淺草寺) 


일반적인 수월관음도가 암좌에 반가좌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형태의 광배 안에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다. 관음보살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 속에서 솟아나 있으며, 물결무늬는 먹선으로 구불구불하게 그어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발치 앞에는 꽃묶음이 솟아올라 있고, 그 앞에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향해 손을 모으고 있다.


한 손을 들어 버들가지를 늘어뜨린 관음보살의 자태는 매우 우아하고 늘씬하여, 고려 미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화면 오른쪽에는 ‘해동 승려 혜허가 그렸다(海東癡衲慧虛筆)는 명문이 남아 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소장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1323년, 고려불화. 165.5cm×101.5cm

일본 교토(京都)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소장


서구방의 「수월관음도」는 왼편을 향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유연한 자세, 가늘고 긴 부드러운 팔과 손, 가볍게 걸쳐진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라, 화려한 군의, 보석 같은 바위와 그 틈새를 흐르는 옥류, 근경의 바닥에서 여기저기 솟아오른 산호초,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가늘고 긴 눈, 작은 입, 배경의 긴 대나무, 투명한 유리사발 안에 안치된 쟁반과 그것에 꽂혀있는 대나무 가지, 얼굴과 가슴 그리고 팔과 발에 그려진 황금빛 등도 이 시대의 불교회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며, 화려하면서도 가라앉은 품위 있는 색채, 섬세하고 정교한 의복, 균형잡힌 구성 등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다. 


서구방(徐九方). 생몰년 미상. 고려 충숙왕 때의 화사(畫師). 본관은 이천(利川) 

시조 서신일 徐神逸(아간대부 부수상) - 서필 (徐弼 내의령 종 1품 수상)- 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 수상) 후손  


그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없으나, 단 한 점 알려진 그의 작품 <수월관음도>로 그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림의 화기(畫記)에 ‘至治三年癸亥六月日內班從事徐九方畫棟梁道人六靜(지치3년계해6월일내반종사서구방화동량도인육정)’

이라는 기록에서 내반종사(內班從事) 서구방이라는 것이 주목된다. 내반종사란 고려시대 내알사(內謁司)에 속한 종9품 벼슬이다.

1310년에 제작된 김우문(金祐文) 필 <수월관음도>의 작자도 ‘화사내반종사김우문(畫師內班從事金祐文)’ 등이라고 되어 있다.

이 2개의 명문으로 추정해 보면, 내반종사는 말직으로서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 등을 맡아보았던 관원이다.

하지만 화사(畫師)로서의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방(徐九方)은 사찰 불사에 화사로 동원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닷가 기암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관음보살은 전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괴이한 절벽이 위태롭게 놓여 있는 것과 겹쳐 대나무 한 쌍이 서 있다. 염주를 든 관음보살의 오른손 쪽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발 아래로는 산호와 기화요초가 자생하고 있는 바닷가 대안에 관음을 올려다보는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처럼 화면의 중심에 관음보살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화면 왼쪽 귀퉁이에 선재동자가 근경(近景)을, 오른쪽 모서리에 대나무가 원경을 이루면서 대나무와 절벽이 화면 오른쪽을 무겁게 차지하였다. 이로써 전 화면이 오른쪽으로 치우친 대각선 구도를 이루고 있다. 화려한 보관을 쓴 얼굴은 풍만하면서도 의젓한 표정이다.

 

둥글면서도 부드러운 어깨, 풍만한 가슴, 미끈한 팔과 손 등이 화려한 꽃무늬가 수놓인 흰 사라를 통해서 은은히 비치고 있어서 감각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해 주고 있다. 이런 매력적인 표현은 붉은 천의에 싸인 하체의 걸터앉은 자세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당대 왕실과 귀족층 귀부인의 고귀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그림은 얼굴 표정이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형태, 부드러우면서도 치밀한 선, 빈틈없는 대각선적 구성 등 14세기 고려 불화의 최고봉인 수월관음도의 불화 양식을 잘 반영한 당대 최고 수준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걸작을 그린 서구방은 그의 직위에 걸맞게 당대 최고의 화가였음이 분명하다.


[출처]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左 - 관음보살의 옆에서 달빛 사이로 비추이는 이것, 버드나무가 꽂혀있는 이 병이 바로 정병이다.

右 - 청동물가풍경무늬정병, 고려12세기, 높이 37.5cm, 국보 92호, 국립중앙박물관


부처나 보살에게 바치는 맑은 물을 담는 물병이 정병(淨甁)이다. 관음보살이 늘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며,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는 달빛 비치는 바다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 옆에 언제나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일반 물병과 달리 물을 담는 주구(注口)와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가 따로 있는 독특한 형태가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중략)


원래 정병은 인도에서 승려가 마실 물을 담던 수행도구였다. 5세기 초 관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을 중생에게 받은 뒤 그들의 병을 치료해줬다는 《청관세음경(請觀世音經)》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불교의 의식구로 의미와 기능이 확대됐다. 이후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보살상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정병은 주로 고려시대에 제작됐다. 《고려도경》에는 귀족과 관리, 사찰과 민가에서 물을 담을 때 모두 정병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인도에서 승려의 생활용기였던 정병이 고려에서는 모든 계층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병이 된 것이다. (고려시대 정병(淨甁) 전시회 / 조선일보 2009.6.24)


“정병과 관음신앙” (2009.6.23-10.11: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 글



물가의 기이한 바위와 아름다운 풀, 커다란 둥근 두광(頭光)을 배경으로,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속이 훤이 비치는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감싼 모습으로 한 보살이 앉아 있다. 

보살의 뒤로 가녀리게 뻗어 있는 두 그루의 대나무, 바위의 한쪽 끝에 놓인 정병(淨甁)과 버들가지는 

이 이가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임을 말해주고 있다. 


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물 건너의 언덕 위에는 한 어린 동자가 두 손을 공손히 합장한 채 서 있으니, 

이는 관음보살로부터 한 마디 진리의 감로수(甘露水)를 얻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달려 온 선재동자(善財童子)라는 구도자이다. 

동자와 보살의 정감어린 시선이 맞부딪치고 이를 상징하듯 커다란 둥근 광배가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았다. 

다음 순간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서, 동자는 또 다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일본 경도(京都)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2


일본 경도(京都)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14世紀, 비단 彩色




일본 카가미 신사(鏡神社) 소장 백의 수월관음도


백의수월관음도. 고려 충선왕2년(1310년), 419.5cm×254.2cm, 소장자: 카가미진자(鏡神社). 일본 사가현립박물관(佐賀縣立博物館) 보관

이 그림에 있었던 화기(畵記)에는 1310년 김우문이라는 사람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써있었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40여일간 전시될때의 모습이다. (당시를 소개한 조정육씨의 블로그)


이 작품은 1310년 5월에 충선왕의 후궁인 김씨의 발원에 의해 8명의 화원이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수월관음도를 발원한 충선왕의 후궁 김씨는 고려 충렬왕 숙비였다가 다시 충렬왕의 아들 충선왕의 숙비가 된 여인이다. 


사람 키의 몇 배가 되는 거대한 크기. 그러면서도 그 지극한 화려 섬세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최근 일본에서 엄청난 재력과 공력을 들여 이를 재현했는데, 도저히 그 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가 100여 개. 그 중 80점 정도가 두루마리로 남은 탱화로, 대체로 14세기 것인데, 

그 대부분이 일본에 있다. 이 불화는 왜 고려 불화가 일본인 수중에 남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310년에 제작되었고, 1359년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다.


현존 최대 고려佛畵 수월관음도 어쩌다 일본 신사(神社)로 넘어갔을까 (조선일보 2009.04.04)

▶ 6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세계 최대 고려불화 (조선일보 2009.8.20)


세계 최대, 최고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1310년에 제작돼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최고 명작으로 손꼽힌다. 지난 2003년 샌프란시스코 전시회 당시에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It is the equivalent of the Mona Lisa(이 작품은 모나리자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극찬했다.


왜구의 약탈로 일본으로 건너간 고려 불화.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명품으로 꼽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로, 비단은 중국이나 일보회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에도(江戶)시대의 기록을 보면 가로 270cm, 세로 500cm였다고 되어 있어 현재 네 변이 조금씩 잘린 채 화면 오른쪽 하단의 작은 선재동자와는 달리 거대 보살이 화면 상단과 하단을 압도적인 흐름으로 지배하는 시산의 구도가 숭고한 환영을 낳는다.


그림 왼쪽 상단에화려하게 장식된 바위 위에 반가부좌 자세의 관음보살이 부들(향포 香蒲)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그 뒤로 두 그루의 대나무가 서 있고, 앞쪽 정병에는 버들가지가 꽂혀 있으며, 다른 그림과 달리 금테 두른 대접받침이 없어 이채롭다.

 

따라서 관음보살이 오른편에 배치된 다른 수월관음도와 달리, 관음보살이 화면 왼쪽에 배치되고 오른쪽 하단에 선재동자를 표현하여 오른쪽을 향해 앉아 있는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경인 죽림과 암굴, 청정한 계곡, 산호가 솟아오르는 물가 등은 모두 불교, 특히 화엄종의 성산인 보타락가산을 나타낸다. 


구름모양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과 쌍죽(雙竹)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풍만한 관음보살의 모습은 흰색 사라와 밝고 선명한 진홍색상의, 그리고 금색의 선묘가 이루는 밝고 호화찬란한 분위기와 함께 우리를 신비한 고려 불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그림은 손상이 많은 편이지만, 관음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는 장면이 뚜렸하다. 고려 관음보살 얼굴은 신라의 보살이나 불상의 얼굴에 띤 자연스러운 미소가 사라졌다. 다소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데 이 보살의 얼굴에는 보일듯 말듯한 신묘한 미소가 번지고 있어 신라불상에 못지않은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관음은 머리에 보살 특유의 보관을 썼는데 보관 중앙에 관음보살의 대표적 징표인 아마타여래 화불을 모셨다.

상반신은 금색피부를 노출했으며 빨강, 초록, 파랑과 같은 색색의 구슬과 금으로 된 목걸이와 팔찌를 하고 있다.


옷가지로는 다양한 문양을 넣은 치마를 두르고, 허리띠와 끈으로 고정시켰다.

투명하고 얇은 사라(紗羅)가 머리에서부터 걸쳐 내려 전신을 덮은 모습이다.

한 줄기 버드나무가지를 꽂은 정병도 관음보살이 걸터앉은 기암 끝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이 그림에는 원래 화기(畵記)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전도(日本全圖)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 이노 타다타가(伊能忠敬)가 1812년에 작성한 「측량일기」(測量日記)에『畵成至大三年五月日 願主王淑妃  畵師 內班從事 김우문(金祐文), 翰畵直待詔 李桂, 同 임순(林順), 同 宋連色, 員外中郞 崔昇(?) 等 四人』이라하여 그림 원래의 화기를 기록하고, 이 그림이 경신사에 오게 된 연유인 기진명(寄進銘)을 기록하였다.


즉 이 불화는 1310년 고려 충선왕의 왕비인 숙비가 지대삼년(至大三年 1310년)에 발원하여 김우문(金祐文)·, 이계(李桂), 임순(林順), 송련(宋連) 등 4명을 포함한 8명의 궁중화사가 그린 것으로, 조성 후 100년이 채 안된 1391년 승려 료우겐(良賢)이 가가미 진쟈(鏡神社)에 진상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우선 현실과 전혀 다른 종교그림 특유의 순수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만나게 된다. 금색 살갗에 귀갑문(龜甲文), 연꽃무늬 입힌 붉은 치마와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사라를 걸친 보살의 옷차림과 단아하면서도 영적인 자세가 눈을 쓸고 간다.


옛적 고려 화공들은 여백과 혼색을 싫어했다. 빨강, 흰색 등의 단순한 원색을 바탕색으로 칠하되 금물로 매혹적인 선묘(線描)를 뿌려 꽉 찬 화면을 만들었다. 날개짓처럼 곡선을 그리는 흰빛 실선으로 관음이 두른 사라가 투명하게 너울거린다는 느낌을, 입술을 금물로 덮었지만 위아래 입술이 맞붙는 곳과 언저리를 빨간색조로 마무리 지어 색의 강약을 주었다. 


투명한 사라에 흰 빛갈을 교묘히 농도조절하면서 구름과 봉황무늬를 넣어 사라의 우아한 실존감을 드러낸 표현은 환상미의 극치다.

화면 왼쪽 하단의 대나무와 바위는 수묵화의 먹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표면에 미세한 초록색을 덧입혀 먹색이 강해 보이지 않도록 조절하였다.


이 그림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통도사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국립도교문화재연구소의 시로노 세지 연구원은 "정밀분석결과 보살 이마 위 백호는 1mm도 안되는 세밀한 나선 모양의 선을 되풀이해서 그린 것이며, 바위 아래도 초록색 안료를 입혀 그늘을 드리운 효과를 연출했다." 고 밝혔다. [출처] 카가미진자(鏡神社).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사라에 금색으로 봉황과 구름문양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이 왜구에 의해 약탈당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니! 




선재동자가 문득 바라보니, 

그 산의 서쪽 산골짜기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나무 숲이 우거지고, 부드러운 풀이 오른쪽으로 돌아 땅에 깔리고,

가지각색 아름다운 꽃을 찬란하게 장엄하였는데,

관자재보살이 깨끗한 금강석 위에 가부좌하고 앉아 계셨다.


- 華嚴經 入法界品 중에서 -


수월관음도는 『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가 보살의 가르침대로 행하기 위해 53선지식을 찾아가서 보살도(菩薩道)를 배우는 내용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그 중 선재동자가 28번째로 찾아간 선지식이 보타락가산의 관세음보살이다.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이 곳에 머물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전해진다. ‘수월관음’이라는 뜻은 달이 높이 떠올라서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보살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서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의 일본 경신사(카가미진자) 소장 수월관음도는 대부분의 고려 불화들이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 가로 254cm에 세로 430cm로 한·중·일 세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에도시대(江戶時代)의 기록을 보면 270cm에 500cm 였다고 되어 있어 현재 네 변이 조금 잘린 채 장황된 상태를 감안하면 원화는 더 크고 장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관음보살이 화려하게 장식된 바위 위에 반가부좌한 자세로 부들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그 뒤로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서 있고 앞쪽 정병에는 버들가지가 꽂혀 있다. 관음보살은 일반적인 수월관음도와 반대로 화면 왼쪽을 향해 앉아 있어서 선재동자도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수월관음도가 화면 오른쪽에 관세음보살이 앉아 있고 왼쪽 하단에 선재동자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1310년 5월에 충선왕의 후궁인 김씨의 발원에 의해 8명의 화원이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정육씨의 블로그)




일본 나라(奈良)국립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63 x 84.7cm, 일본 나라(奈良)국립박물관 소장 


관음보살 우측에 투명한 받침 위에 먹선과 금선으로 윤곽선을 그린 정병을 배치하고, 좌측에는 두 그루의 대나무를 배치한 점에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전형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으나, 관음보살의 보관에서 나온 듯한 구름 위에 부처가 빛을 발산하며 서 있는 표현은 매우 독특하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보관 부분은 탈락이 심해 화불이 그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보관의 아미타불이 구름을 타고 나타난 모습으로 표현된 것으로 추측되며, 다른 수월관음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예이다.


관음보살의 윤곽선은 주선으로, 눈썹은 먹선으로 그렸다. 좌우로 치켜 올라가 사선이 된 눈과 수평으로 표현된 입술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색하며, 목의 삼도는 주선으로 표현하였다. 베일에는 흰색의 마엽문이 선명하고, 그 위에 S자형의 당초원문을 금니로 그렸다. 군의에는 귀갑문을 촘촘히 그리고 그 위에 연화하엽문을 그렸다.


무릎을 꿇은 선재동자 앞에 펼쳐진 바다는 산호와 각종 꽃들로 채워져 있고, 바다에는 수파문(水波文)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그 맞은편 하단에는 바다에서 여의주를 들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역시 다른 수월관음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도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일본 대덕사 (大德寺 다이토쿠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대덕사(大德寺)는 일본 교토에 있는, 도요도미 히데요시(豊信秀吉)의 다도(茶道)선생님이 주석했던 유명한 절.

이 작품 외에도 2점의 수월관음도를 소장하고 있다.

의상대사의 낙산사 전설을 담고 있다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본 대덕사 (大德寺 다이토쿠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1323년.

고려 후기, 227.9cm×125.8cm, 비단에 채색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바위 위에 약간 오른쪽을 향하여 반가부좌로 앉아 있고, 앞에는 정병, 뒤에는 대나무 등 기본적인 구성과 모티브가 고려관음보살도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선재동자가 화면 오른쪽 아래 큰 잎위에 올라선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 화면 왼쪽 윗부분에 꽃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새를 그린 점, 더욱이 화면 아랫부분에 공양물과 지물을 든 여러명의 인물이 보이는 점  등 극히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묘법은 색채, 묘선 등 경신사나 천옥박물관의 작품과 상통하고 있으나 모티브가 많으면서도  화면구성이 짜임새 있어 안정되어 보이고 물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율동감이 특히 돋보인다.  안정된 구도, 화려하면서도 응응한 정취, 동적인 화면 구성 등 고려관음도를 대표할만한 품격을 지닌 그림이다.

 

이 그림이 무엇을 근거로 하여 그렸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관음보살앞에 포진해있는 공양(供養) 인물군상에 대해  『 삼국유사 』3권 「낙산3대성, 관음, 정취, 조신」조에 나오는 '삼국유사'의 낙산성궁(洛山聖窟) 설화에 의거해 용왕과 그 권속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관음의 발언저리 수면으로부터 솟은 연봉오리, 물가의 금모래, 홍백산호, 홍백환주, 공양화 등은 신비로움을 가미한다. 

우측 하단에는 雙竹이 뻗어 존재감을 나타내며, 좌측 모서리엔 만개한 꽃가지를 부리에 문 靑鳥 한 마리가 관음 쪽을 향해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포말을 일으키며 일렁이는 파도는 화면 2/3 높이까지 펼쳐져 있어 광활한 해면을 엿볼 수 있다. 우측 해수면 한켠에는 관음을 경배하는 선재동자가 연꽃잎 위에 떠있다. 한편, 해수면 위에 피어오르듯 瑞氣를 나타내고, 그 속에 供養人物群像이 관음을 향해 한쪽 방향으로 줄지어 다가가고 있다.  


이처럼 대덕사 작품에서 보이는 공양인물군상의 행렬은 전형적인 고려 수월관음도(암좌에 앉은 관음상과 이에 대응하는 선재동자를 묘사)와는 구분되는 이색적 도상으로,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과 더불어 2점만 존재한다. (출처: 단군)



이 수월관음도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림에서 의상대사의 낙산사 전설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음보살앞에 포진해있는 공양(供養) 인물군상에 대해 '삼국유사'의 낙산 성굴설화에 의거해 

용왕과 그 권속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쓰이(三井) 기념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새로 발견된 수월관음도의 왼쪽 아랫부분을 확대한 것으로 관음보살의 발치에서 남녀 무리가 공양하고 있다.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수월관음도와 흡사하지만 이 공양자들을 더 크게 그렸다.



14세기 고려 불화 발견, 日 쇼군 소장품전에서…"최고급 명품 평가 입증" (2014.10.20 조선일보)

존재조차 몰랐던 작품… "방금 그린듯 생생"  (프리미엄 조선. 2014.10.20)


[현존 고려佛畵 160점 중 최고 걸작, 700년만에 日서 발견]

日 개인소장자가 꼭꼭 숨겼던 것, 전시소식 듣고 간 韓전문가 확인 "보존상태 정말 좋아 깜짝 놀랐다"

달밤 파도치는 바위 위 관음보살… '수월관음도'는 전세계 40여점뿐. 15세기 日쇼군 집안 家寶로 전시돼




일본 다이산지(太山寺)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09.2 x 56.7 cm, 일본 다이산지(太山寺)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일본 태산사에서 소장한 작품으로 현재 오사카시립미술관에 기탁돼 있다.


화면 가운데 관음보살이 보타락가산의 바위 위에 반가좌한 자세로 선재동자의 방문을 맞이하고 있다. 

선재동자는 관음보살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다리를 약간 구부린 모습으로 관음보살을 우러러보고 있다. 

관음보살의 얼굴 표현에는 탄력이 있으며, 눈썹과 아래 위 눈꺼풀의 선은 가는 아치형으로 뻗어 긴장감을 준다. 

입술은 얇은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잡고, 입꼬리는 진청색으로 마무리하였다. 

목의 삼도는 고려 수월관음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형의 선묘로 표현하였다.





일본 등정제성회유린관(藤井齊成會有隣館)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본 교토 등정재성회유린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시대 1323년.  비단바탕에 채색.  105.5cm x  54.3cm

  

관음보살이 바위 위에 약간 오른쪽을 향하여 반가좌하고, 그 뒤에 대나무를, 앞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을,

화면 아래 오른쪽에 입상의 선재동자를 표현한 전형적인 고려 수월관음도이다.

화면 아래쪽 가운데에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그려 넣은 것이 이채롭다.



기본적인 묘법은 경신사 등의 수월관음도와 유사하나 

사라(紗羅)의 바탕무늬로 마엽문(麻葉文)이 표현된 것이 다르며, 특히 금니(今泥)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밝고 화려하며 이것은 특히 배경인 바위가 어둡게 표현되어 더욱 장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고려 불화의 화려함과 장식성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 제작시기는 청옥박고관 소장의 수월관음도와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출처] 등정제성회유린관본(藤井齊成會有隣館本),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일본 정가당문고(靜嘉堂文庫)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일본 도쿄(東京). 정가당문고(靜嘉堂文庫).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시대. 세기, 견본채색, 110 x 59.2cm,

 

관세음보살은 치마를 입고 화불이 있는 보관(寶冠)을 썼으며 보관에서부터 전신을 감싸는 베일을 걸치고 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부좌의 자세로 몸을 약간 틀어 오른쪽을 향한 채 바위 위에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앞쪽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등뒤로는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으며,

화면을 향하여 왼쪽 아래 구석에는 선재동자가 허리를 굽혀 합장한 자세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화면의 구성요소와 자세는 14세기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상과 공통되는 것으로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이다.

윤곽과 세부의 묘선은 주(朱)로 긋고, 그 선을 따라 아주 엷게 다시 주로 중복하여 그어 입체감을 나타냈다.

베일은 바탕무늬인 마엽문을 백색 안료로 그리고, 윤곽과 주름선도 백색 안료로 그린 다음 그 선을 따라 금니로 겹쳐 그었는데,

다시 그 이중의 선을 따라 백색 안료로 엷게 바림질을 하여 질감을 나타내려 하였다.

 

베일에는 직경 2.3cm 정도의 고려 불화 특유의 연화당초원문(蓮花唐草圓紋)을 금니로 그려넣었다.

치마는 전면에 주를 칠하고 백색 안료로 거북등무늬를 그렸는데 그 위에 다시 먹선을 그어 뚜렷하게 하였다.

대체로 이 수월관음도의 표현과 기법을 종합하여 보면, 전체적인 형상이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고려 불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희귀한 문화재이다.


[출처] 정가당문고(靜嘉堂文庫).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일본 세이슈라이코지(聖衆來迎寺)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고려 14세기 중엽 추정. 82.7×144.5㎝. 비단에 채색. 

일본의 중요문화재. 일본 오쓰시(大津市) 성중내영사(聖衆來迎寺) 소장


바위 위에서 반가좌한 관음보살의 자세, 배경 묘사,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 등 전형적인 고려시대 관음보살도의 도상을 갖춘 그림이다.


관음의 신체는 경전에서 언급한 대로 용맹장부과 같은 풍만한 얼굴과 건장한 신체, 의젓한 자세로 표현되어 있어 다른 관음도에서 보다 남성적인 면이 느껴진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과 더불어 흰색과 담홍색이 두드러진 배색법은 김우문필 관음도(金祐文筆 觀音圖, 1310년 작, 일본 鏡神社 소장)와 유사하다. 특히 치마와 베일의 끝단 등에 흰색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땅에 무릎을 꿇은 채 합장 예배하는 선재동자의 자세는 서구방필 관음도(徐九方筆 觀音圖, 1323년 작, 일본 泉玉博古館 소장)와 일본 원성사구장 관음도(願成寺舊藏 觀音圖) 외에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점이다.


이 관음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옷의 문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의 관음상은 대부분 세밀한 귀갑문(龜甲文)이 새겨진 붉은색 치마[裳]를 입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치마에는 무늬가 없어 예외적이다. 또한 투명한 베일에 수놓아진 원문(圓文)은 보통 1종류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꽃잎을 3매 조합시킨 것, 연화의 꽃과 잎을 조합시킨 것, 당초를 역S자형으로 조합시킨 것 등 3종류의 원문이 사용되고 있어 특이하다.


풍만하고 의젓한 장자풍의 자태와 흰색과 담홍색의 조화에서 오는 은은한 화면에서 우아한 고려 불화의 분위기가 잘 느껴진다. 

그리고 선재동자의 모습과 문양이 독특한 불화로 고려수월관음도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작 시기는 14세기 중엽 이후로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관음보살에 대해서 언급한 경전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法華經 觀世音菩薩普門品≫과 ≪화엄경 입법계품 華嚴經 入法界品≫이 대표적이다.

전자에는 관음보살의 성격과 공덕이 구체적으로 설해져 있다.

후자에는 관음의 거주처에 대하여 서정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 의하면, 한 거사가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내용이 있다.

 

『남인도의 엄곡(嚴谷)에 있는 바다에 면한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는 수많은 성현이 살고 있는데,

온갖 보배로 꾸며졌고 지극히 청정하며 꽃과 과일이 풍부한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연못이 있으며,

이 연못 옆 금강 보석 위에는 용맹장부인 관음보살이 결가부좌하여 앉아 있으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니, 너는 가서 모든 공덕을 물어보아라.』

수월관음보살도의 도상적 전거는 바로 이러한 장면 묘사에 있다고 하겠다.


[출처] 세이슈라이코지(聖衆來迎寺).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작성자 단군




일본 요주지(養壽寺)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상단에는 달을 의미하는 작은 원을 묘사하였고. 관음보살 오른쪽의 바위 위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을, 발 아래에는 무릎을 굽히고 손을 모아 공손히 법문을 구하고 있는 선재동자를 배치하였다.

 

선재동자를 감싼 채 발 아래까지 휘돌아 내려온 붉은색의 숄에는 세밀한 금선(金線)이 선명히 남아 있고,

붉은색·녹색·금색의 색감이 화려하면서도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본 고오야상 레이호칸(高野山靈寶館) 소장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高野山靈寶館(고야산령보관).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고려시대. 가로 51.4㎝, X 97.8㎝. 14세기 추정.

 

고려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던 수월관음도는 대체로 비슷한 도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의상(義湘)이 낙산(洛山)에서 관음보살을 친견(親見)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그것을 도상화한 형식이 계속 유행했던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선재동자(善財童子), 염주, 공양인(供養人), 한 쌍의 청죽(靑竹) 등의 표현은 중국·일본의 수월관음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다.


이 그림은 경직된 얼굴 표정으로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어 민중과 친근한 관음보살의 매력을 감소시킨 듯 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한 전체적인 모습, 투명한 천의(天衣)의 화사함, 화려한 장신구 및 의문(衣紋) 등에서 고려시대 관음도의 기본도상을 충실히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유출되어 고오야상 레이호칸[高野山靈寶館(고야산령보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1991년에 미국 뉴욕의 소더비사(社) 경매에서 176만 달러에 외국인에게 낙찰되었다.


[출처] 고야산령보관(高野山靈寶館).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일본 로산지(盧山寺)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본 교토 오타니(大谷)대학박물관. 로산지(盧山寺)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전형적인 고려시대 도상이지만 상부에 토끼라든가 계수나무를 묘사한 달이 표현된 사례는 이것과 장락사본, 

그리고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본을 포함해 3점에 지나지 않는다. 

구도 여행에 나선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담았다. 


수월관음도는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고려시대의 불화이다

관세음보살로서 33응신(應身) 중 하나.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고 하는데,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소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마치 버드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인 명칭이다. 또한 백의를 입고 있는 경우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이라고 한다.


수월관음은 물가의 바위에 수목(樹木), 대나무 등을 배경으로 하여 걸터 앉은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꽂힌 정병과 연꽃, 산호초 등이 있다. 이는 《화엄경華嚴經》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보타락산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다. 중국에선 8세기 후반 당唐의 주방(周昉, 저우 황)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하여 송, 원대(宋元代)에 특히 유행하였다. 특히 돈황에서 출토된 943년 채색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예로 ‘수월관음’이라는 명문이 있어 매우 의미가 깊다. 12세기 중기에는 수묵으로도 그려졌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중국과는 달리 발 아래쪽에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조선시대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큰 원형 광배를 지고 서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476년 무위사無爲寺 극락전 벽화가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공개된 고려불화는 160여 점인데, 이중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20여 점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130여 점은 모두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불화의 대부분을 일본이 보유하게 된 이유는 고려 말 왜구의 약탈과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탈취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로산지(盧山寺)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일본 고잔지(功山寺)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46 x 85.5 cm 일본 고잔지(功山寺)


이 작품은 관음보살이 측면을 향해 앉아 있는 수월관음도 형식과 달리, 관음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관음보살이 정면을 향하도록 그린 수월관음도의 예는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본을 비롯하여 몇 점이 있으며, 이러한 자세는 조선 초기로 계승된다.


관음보살은 오른손을 아랫배에 두고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연꽃가지를 받쳐 들고,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로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연꽃을 잡고 있는 양 손바닥에는 볍륜法輪을 주선으로 그려 넣었다. 관음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는 도상적 근거는 [관세음보살설소화응현득원다라니觀世音菩薩燒華應現得願陀羅尼]의 '...觀世音像身着白衣坐蓮華像 日手捉蓮華 日手捉조甁 使髮高堅...'의 내용과 관계가 있으나, 수월관음도에서 관음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는 예는 드문 편이고 조라쿠지(長樂寺) 소장본 등 일부에서만 볼 수 있다. 


또한 보관에 표현된 화불 역시 관음보살이 좌상인 경우 화불도 보통 좌상으로 그리지만, 작품에서는 화불이 입상으로 묘사되어 이채롭다. 정병도 보통은 좌측에 위치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우측에 있으며, 통상 관음보살 뒤편에 그려지는 대나무도 화면 하단 좌우에 기암괴석과 함께 그려져 있어 일번적인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관음보살의 선홍색 치마에는 흰색으로 귀갑문을 그리고 내부에 국화문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연화하엽문을 그렸다. 보관에서 늘어뜨린 사라에는 흰색으로 마엽문을 그리고 그 위에 S자형 당초원문을 금니로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수월관음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수월관음도. 고려4세기 세로 113.7㎝, 가로 55.3㎝

관음보살은 어둠 속의 빛처럼 앉아 있고 발치에는 예배하는 여러 중생들이 작게 묘사돼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수월관음도는 본래 찰스 스튜어트 스미스라는 사람의 컬렉션이었는데 사후에 그의 유족이 1914년 기증한 것이다. 이 그림은 원래 일본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868년 일본의 메이지(明治) 유신(維新) 때 정부는 토속신과 외래신을 구분하는 '신불분리(神佛分離)' 정책을 채택했고, 이때 많은 불상(佛像)·불화(佛畵)·경전류들이 소각·파괴되었다. 현재 구미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본의 불교 미술품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 수월관음도도 오랫동안 일본 불화로 여겨져 왔던 것으로 보아 메이지 유신의 와중에 미국으로 흘러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불화는 대부분 극락세계나 지옥구제 같은 내용이지만, 그중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복을 주고 고통과 재난에서 구제해주며 나아가 극락세계로 이끌어줄 뿐 아니라 불법을 구하는 수행의 방법까지도 암시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물에 비친 달처럼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하여'수월관음도'란 이름이 붙여졌고, 현재 40여 점이 남아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수월관음도는 세로 113.7㎝, 가로 55.3㎝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천연안료와 금을 사용해 그렸다. 관세음보살이 바위 위에 책상다리[半跏] 자세로 앉아 있고 그 앞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淨甁)이, 등 뒤에는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화면의 기본 구도는 일반적인 고려 수월관음도와 큰 차이가 없으나, 아래에 한 무리의 공양자(供養者)들이 그려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채색과 문양은 고려불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아주 섬세하여 천의 짜임 무늬가 보일 듯 말 듯 투명하게 표현된 베일, 원색을 사용했으나 거슬리지 않고 부드러운 붉은 치마, 마치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듯 몸체와 문양 등에 사용한 금니(金泥) 등에서 화려함보다는 고결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공양자를 그린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희귀하여 일본 교토(京都) 다이토쿠지(大德寺)에 한 점 더 있는 정도다. 이 그림의 제작시기는 다이토쿠지 수월관음도보다 조금 늦은 14세기 중반쯤으로 짐작되는데, 공양자들을 맞이하는 관음보살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부드러운 표정, 그리고 양자의 극적인 만남에서 느껴지는 화면의 긴장감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이 그림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본 이외 지역의 고려불화가 처음으로 국내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대표유물 /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 / 2009.06.29 조선일보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의 결가부좌 수월관음도




국보급 3번째 ‘고려 결가부좌 수월관음도’ 美서 확인

동아일보 2014.07.09


미국의 유명 미술대학으로 꼽히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의 미술관이 희귀한 고려불화 1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퍼졌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 고미술상을 통해 이 작품을 입수한 미술관 측은 처음엔 ‘수준 높은 중국불화’로 여겼다. 하지만 아시아 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심스레 고려불화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불화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2년 전쯤 찾아왔다. 미술관과 친분이 깊던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직접 이 작품을 볼 기회를 얻었다. 조 교수는 “예술적 가치도 탁월했지만 기존에 익숙한 ‘반가좌 수월관음도’와 다른 결가부좌를 튼 도상에 깜짝 놀랐다”며 “초특급 고려불화임을 직감하고 국내 최고 권위자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에게 의뢰하라고 미술관에 조언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 교수는 지난해 미 워싱턴에 있는 프리어 미술관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미국 내 고려불화 데이터베이스 구축’ 프로젝트를 시행하니 주 연구자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온 것. 올해 초 정 교수는 로드아일랜드로 가 ‘결가부좌 수월관음도’를 만났다. 


정 교수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수월관음도는 약 46점만 알려졌는데 대부분 반가좌 형태이고 결가부좌는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의 조라쿠지(長樂寺) 소장품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딱 2점밖에 없는 것”이라며 “RISD가 소장한 작품은 보존 상태도 좋고 예술성도 탁월한 명품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번에 세 번째로 확인된 ‘결가부좌 수월관음도’는 희귀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예술적 완성도 역시 빼어난 작품이다. 은은하게 밴 관음의 미소는 물론이고 전체 색감이 조화롭고 묘사도 세련됐다. 정 교수는 “기존의 고려불화와 비교해도 종교적 성취와 예술성 감흥을 함께 풍기는 걸작”이라고 평했다.


이 외에도 문화재청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또 다른 국보급 고려불화가 2점이 더 발굴됐다. 미 보스턴 미술관이 1911년에 구입한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반가좌 수월관음도’(1929년 구입)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 두 작품 모두 14세기 중반과 후반 고려불화의 전형적인 양식이 훌륭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그간 고려불화는 일본에 130여 점, 한국과 미국에 10여 점씩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미국에서 더 많은 고려불화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리어 미술관은 내년 말 이 프로젝트의 성과를 인터넷을 통해 전면 공개할 방침이다.


:: 결가부좌와 반가좌 ::

결가부좌는 흔히 말하는 양반 다리처럼 양다리를 함께 접고 앉은 자세를 가리킨다. 반가좌는 한쪽 다리는 접고 다른 쪽 다리는 내리는 자세다. 결가부좌는 주로 부처가 취하는 자세로, 관음보살은 대부분 반가좌를 한 경우가 많다. 관음보살이 결가부좌를 튼 불화나 불상은 매우 희귀하다.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프리어겔러리(Freer Gallery of Art) 소장 수월관음도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14세기 중반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프리어·새클러 갤러리는 아시아지역 유물과 작품 4만691점을 5일 홈페이지(open.asia.si.edu)에 게재했고 이 가운데 한국 유물 781점이 공개됐다. 온라인에 공개된 한국의 주요 유물은 고려불화 3점을 포함 고려청자 매병·정병, 조선시대 백자, 분청사기, 병풍, 청동 거울, 수묵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공개 이전에 알려졌던 한국 문화재 550점 외에 도자기 파편, 토기 조각 231점까지 수장고에 있는 유물들이 모두 공개됐다. 13세기 말~14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고려 불화 3점은 한국에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아 왔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디트로이트 출신의 철도차량 제작업자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 1854-1919)와 정신과의사이자 자선사업가인 아서 미첼 새클러(Arthur Mitchell Sackler, 1913-1987)가 기증한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 유물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1910~1945)에 골동품 회사인 야마나카 상회에서 구입한 것이다. 프리어는 일본에서 사용되던 조선시대 다기에 매료돼 이를 폭넓게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어·새클러 갤러리는 지난 1998년부터 소장품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이를 모두 공개했다. 홈페이지에는 한국 유물 외에도 중국 13,831점, 일본 12,115점, 태국 3,053점 등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수집된 문화재 사진들이 게재됐다. 줄리안 레이비(Julian Raby) 프리어·새클러 갤러리 책임자는 이번 온라인공개에 대해 "예술민주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스미스소니안박물관은 향후 소장 문화재의 360도 이미지와 3D 입체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 스미스소니언 소장 한국유물 대거 온라인 공개 - 해외문화홍보원 2015.01.08)




미국 하버드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 14C. Harvard Art Museum


하버드 아트 뮤지엄의 한국미술 콜렉션




독일 쾰른동아시아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98 x 55 cm 독일 쾰른동아시아박물관


보타락가산을 배경으로 한 고려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따르는 작품으로, 화면 전체에 관음보살의 모습을 크게 그렸다. 

전체적으로 먹선과 주색으로 윤곽을 잡은 관음보살은 이목구비가 선명하나, 목으로 이어지는 삼도의 표현은 희미하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오른손은 염주 대신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다이토쿠지(大德寺)본, 쇼텐지(昇天寺)본,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본 등 일부 수월관음도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유형이다. 


수월관음도에서는 보통 버드나무 가지가 정병에 꽃혀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나, 도쿄국립박묵관 소장 <아미타삼존도>, MOA미술관 소장 <아미타삼존도>와 같이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로 등장할 때는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양손에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보관에서 발 아래까지 늘어뜨린 베일에는 마엽문 대신 흰색으로 격자문을 그리고, 그 위에 운문과 봉황문 등을 금니로 그렸다. 화면 좌측 하단에는 선재동자가 무릎만 약간 굽힌 자세로 관음보살을 응시하고 있다. 관음보살 좌측에는 빈 정병이 투명한 받침 위에 놓여 있으나 등 뒤에 일반적으로 배치되는 대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독일 동아시아박물관 설립자인 아돌프 피셔 부부가 1905년과 1910년 두 차례 한국 여행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려청자에 매료됐고 이후 일본에서 한국 미술품을 수집중, 1910년 한국에서 일본인 예술품 중개상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타락가산을 배경으로 한 고려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따르는 작품으로, 화면 전체에 관음보살의 모습을 크게 그렸다. 엷은 베일로 머리부터 몸을 감싸고 반석 위에 앉아 인자하게 왼쪽 귀퉁이에 나타난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반석은 금강좌 답게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먹선과 주색(朱色 붉은 색)으로 윤곽을 잡은 관음보살은 이목구비가 선명하나, 목으로 이어지는 삼도의 표현은 희미하다. 관음보살 좌측에는 빈 정병이 투명한 받침 위에 놓여 있으나 등 뒤에 일반적으로 배치되는 대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오른손은 염주 대신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다이토쿠지(大德寺)본, 쇼텐지(昇天寺)본, 센오쿠학고간(泉屋博古館)본 등 일부 수월관음도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유형이다.


수월관음도에서는 보통 버드나무 가지가 정병에 꽃혀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나, 도쿄국립박묵관 소장 「아미타삼존도」, MOA미술관 소장「아미타삼존도」와 같이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로 등장할 때는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양손에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보관에서 발 아래까지 늘어뜨린 베일에는 마엽문 대신 흰색으로 격자문을 그리고, 그 위에 운문과 봉황문 등을 금니로 그렸다.

팔지, 목걸이 등 보석과 화려한 용무늬 옷 등 불교미술에서 중요한 장엄(裝嚴)이 고려불화처럼 잘 묘사된 것도 드물 것이다.





프랑스 기메(Guimet)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프랑스 기메 국립 동양박물관 소장 (The Guimet Museum, Paris)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후기. 비단 바탕에 채색. 105㎝ x 58㎝


관음보살이 화면 가득히 부각되었다. 보관을 쓰고 가슴에는 아름다운 장식을 걸치고, 손에는 일본 단잔진자(談山神社) 소장 <수월관음도>와 같이 투명한 염주를 손목에 걸고 있는데, 엄지와 중지로 다시 한번 잡아 여러 줄의 염주처럼 보인다. 화면 하단 향좌측에 합장한 채 관음보살을 응시하고 있는 선재동자는 측면관을 하고 있어 얼굴을 한쪽면만 표현하였다. 통통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목에는 능형의 삼도를 두었는데, 삼도를 주선으로 표현하고, 그 주위에 바림을 하여 음영효과를 나타냈다. 


단잔진자 소장 <수월관음도>와 조라쿠지(長樂寺) 소장 <수월관음도>에서는 주선으로 삼도를 표현한 반면, 이 작품에서는 주선을 긋고 바림을 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가슴과 배 부분도 선묘로 표현하고 그 주위에 바림을 하여 볼륨감이 있다. 하단에는 관음보살을 찾아온 선재동자, 화려한 꽃다발, 붉은색의 산호를 배치하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관음보살의 뒤에는 청죽이 있으며, 기암괴석은 녹청색으로 채색하여 화려함을 더했다. 이 작품은 청죽과 버드나무 가지의 녹색이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관음보살과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대각으로 배치되고, 그 사이에는 수면이 묘사되며 관음보살의 배후에는 기암괴석은 녹청색으로 채색하여 화려함을 더했고. 두 그루의 청죽(靑竹)이 그려진 수월관음도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투명한 사라를 걸친 관음보살은 물 위로 솟아오른 암좌에 풀잎을 방석 삼아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비스듬히 앉아 있다. 한쪽 발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좌의 자세로 한 손은 무릎 위에, 다른 한 손은 돌출한 바위 위에 얹고 있다.


관음보살과 사선으로 아래쪽 대안(對岸)에는 통통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정연한 선재동자가 허리와 무릎을 약간 굽히고 합장한 채 관음보살을 우러러보고 있는 자세로 조그맣게 묘사되어 있다.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사이의 수면에는 산호와 연꽃이 흩어져 있다. 바위 뒤로 두 그루의 대나무는 잎에 비해 줄기가 굵은 편이다. 관음보살의 오른손 옆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淨甁)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수반(水盤)이 보인다. 관음보살의 왼발을 받치고 있는 작은 연화좌 옆에는 봉오리진 연꽃과 활짝 핀 꽃다발 표현이 화려하다.


이를 경도(京都) 천옥박고관(센오쿠학고간 泉屋博古館)에 있는 서구방이 그린 수월관음도(1323 년 작)와 비교한다면, 관음보살의 자세라든가 염주를 든 손, 착의법(着衣法), 장신구를 착용한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구성, 배경 묘사 등 전체적인 도상의 형식은 두 작품이 같은 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신체의 윤곽선을 따라 붉은 선염(渲染 :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하는 일)이 가해져 부피감을 강조하고 있으며 얼굴도 둔중하다.


다소 경직된 경향을 보이는 이 수월관음도의 신체는 주색(朱色)에 호분(胡粉)을 섞은 살색으로 부드러운 피부의 질감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어두운 갈색의 바탕색으로 인해 관음보살이 어둠 속에서 마치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현신하는 것 같은 신비한 효과를 주고 있다.


[출처] 프랑스 동양박물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





소나무가 그려진 이탈리아 제노바市의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14세기 고려, 가로 55.4㎝, 세로 105.9㎝이탈리아 제노바, 정우택 동국대박물관장 제공


 

도상 왼쪽 상단부에 있는 소나무 수묵화. 수월관음도 도상에 고식적인 소나무 수묵화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위에 붙어 있는 소나무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가지와 솔잎까지 생생하다.



소나무 그려진 고려불화 이탈리아서 발견
현대불교신문
2017.02.21


소나무가 그려진 특이한 도상의 고려불화가 이탈리아 제노바서 발견됐다. 

고려불화 전문가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은 “동국대 개교 110주년 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유럽지역 한국불교미술품 조사연구’사업을 진행 중 이달 초 이탈리아 제노바의 한 박물관에서 고려 수월관음도 한 점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2월 21일 밝혔다. 


동국대 ‘유럽 불교미술 조사’ 일환 / 코소네 기증作… 유럽 8번째 발견 / “색감 변질돼 보존 처리 등 필요해”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 색, 119.2 x 59.8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926호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중앙에 표현한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문화재청의 설명)



이 작품은 관음보살에 비해 배경이 되는 보타락가산의 비중이 비교적 큰 편이다. 관음보살의 보관에는 화불이 있으며, 가슴에는 구슬장식을 늘어뜨렸다.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로 붉은빛이 감도는 염주를 길게 잡고 있다. 관음보살의 우측 바위 위에는 버느나무 가지가 꽂혀 있는 정병이 유리그릇 위에 놓여 있다. 관음보살의 좌측 후면에서는 길게 뻗은 청죽靑竹 두 그루가 서 있다. 관음보살이 밟고 있는 연화좌 옆에는 연꽃봉오리가 물에서 솟아 있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으며, 붉은색의 산호가 자리하고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관에 걸친 사라는 흰 선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마엽문 바탕에 봉황문과 당초원문을 금으로 그렸다. 치마에는 이중의 귀갑문 위에 연꽃과 연잎이 십자모양으로 교차된 연화하엽문을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채색, 묘선, 문양 모두가 고려불화의 기본적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으로 치밀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지닌 그림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06.2 x 54.8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보물 1426호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소재의 1323년 작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를 위시한 고려시대 14세기 관세음보살도들과 비교해 보면 마치 한 본을 사용하기라도 한 듯 구도와 인물의 형태가 거의 같고,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나아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수월관음도와 비교하여도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의 설명)



보타락가산을 배경으로 한 고려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음보살의 시선은 선재동자를 향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통통한 얼굴에 정연한 이목구비와 턱 아래로 이어지는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다. 선재동자는 목에 장식을 하고 합장한 두 손에도 손목장식을 착용하고 있다. 관옴보살 우측 후면에 배치된 대나무는 안료가 탈락되었으나 흔적이 남아 있다.


선홍빛의 치마에는 귀갑문 바탕에 좌우로 연잎을, 상하로 만개한 연꽃을 배치한 연화하엽문을 시문하였다. 사라는 흰 선으로 마엽문을 표현하고, 그 위에 유려한 당초원문을 그렸다. 이러한 양상은 단잔진자(談山神社)본 쇼텐지(昇天寺)본, 하버드 아서 새클러 박물관본 등에서도 볼 수 있다.관음보살 우측 바위 위에는 정병이 놓여 있는데, 정병은 흰색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하대와 중대 주구(注口)부분에 문양대를 두어 기하학적 문양을 시문하였다. 정병은 대부분 가채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호림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03.5 x 53.0cm 호림박물관, 보물(寶物)1903호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설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入法戒品」에 근거하며,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가는 남방순례 중 28번째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보살도는 묻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인데, 그림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라는 이야기의 두 주인공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화면의 중심에는 보타락가산 금강암좌에 반가좌 앉은 관음보살을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하였고, 우측 하단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합장하며 공손히 보살도를 묻는 선재동자를 조그맣게 배치하여 두 주인공 사이의 심오한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이외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루는 청죽·바위·정병 등 경물의 표현과 배치 등은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존상의 형태와 구도 등에서도 고려 불화답게 빈틈없는 짜임새와 균형감을 보여준다.


선묘 역시 굵고 가는 다양한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물 흐르듯 유려한 선묘를 보여주고,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을 전신에 걸쳐 시문하였음에도 고귀한 품격을 놓치지 않았으며, 붉은색과 백색, 금색 등 고급스러운 색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요란하지 않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출하였다. 이 작품은 비록 박락되고 손상된 부위가 후대에 수리되었지만, 고려 후기 수준 높은 불교회화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의 설명)



관음보살은 풍만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정연하게 표현되었고, 턱에서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삼도에는 바림을 하여 볼륨감이 있다. 가슴과 상복부에도 같은 방식으로 바림하였다. 양손에는 흰 염주를 쥐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염주는 오른손에 들고 밑으로 늘어뜨린 모습으로 그리는 데 비해 이 작품에서는 양팔을 의자에 앉은 자세로 양쪽에 놓고 염주를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보관부터 발 아래까지 내려온 흰색의 사라는 탈락이 많아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위에 표현된 당초원문을 통해 사라를 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붉은색의 치마에는 선묘로 된 귀갑문 위에 연화하엽문을 비교적 크게 그렸다. 하단에는 기암괴석과 물결 위에 산호를 배치하였다. 선재동자는 합장을 한 채 관음보살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몸체에 비해 팔, 다리가 작게 표현되었으며 손목 장식을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우학문화재단 소장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003x525mm, 우학문화재단 소장, 보물 1286호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문양의 특징인 연꽃덩쿨무늬를 원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 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의 설명)



고려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따르는 작품이다. 관음보살은 머리를 들고 있어 발 아래 선재동자에게 시선을 멎추지는 않고 있다. 전체적 윤곽은 먹선과 주선으로 그리고, 턱 아래로 이어지는 목에는 능형菱形(마름모모양)의 삼도가 선명하다. 좌우의 가슴과 상복부의 주름선은 주선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손목에 유리구슬로 된 염주를 걸치고, 다시 엄지와 중지로 잡고 있다.


머리에서부터 늘어뜨린 사라에는 흰색의 마엽문이 선명하고, 그 위에 S자 형태의 당초문을 금니로 그렸다. 선홍빛의 치마에는 귀갑문 바탕에 연꽃과 연잎을 교차 배치한 연화하엽문을 비교적 큼직하게 그린 점이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본과 유사하다. 관음보살 우측 바위 위에는 정병이 놓어 있고, 좌측 후면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배치되어 있다. 발 아래 선재동자는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허리를 굽혀 관옴보살에게 예를 갖추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 참고 : 고려의 혼(魂)을 담다, 수월관음도 - 유마리(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조선일보(2009.10.16)




기업가 윤동한씨가 구입 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14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표구를 포함한 전체 크기는 172cm×63cm, 화면 크기는 91cm×43cm국립중앙박물관


(주)한국콜마 홀딩스의 윤동한(尹東漢) 회장으로부터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 1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작품입니다. 2016년 초 윤동한 회장은 일본에 있던 이 수월관음도를 구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의 거처와 형상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그 도상은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의 달빛이 비치는 연못가 금강보석(바위)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찾아뵙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며 현재 전 세계에는 160여 점의 고려불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수월관음도는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인해 고려불화의 백미로 꼽힌다. 


수월관음도는 국내외를 통틀어 대략 46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는 5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리움미술관(2점),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우학문화재단,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대부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윤동한 회장의 구입과 기증에 따라 국내에 있는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모두 6점이 되었으며, 국립박물관 소장품으로는 최초입니다.


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역시 고려 수월관음도의 전형적 도상을 따르고 있다. 미소를 띤 관음보살은 신광과 두광으로 둘러싸여 금강보석 위에 반가부좌하고 있으며, 금니당초무늬로 장식된 투명한 천의를 두르고 있다. 관음보살 앞쪽에는 선재동자를 작게 표현하였고, 화면 왼쪽 중간에는 승반과 정병을 그렸다. 이처럼 이 기증품은 여러 도상들을 섬세하고 유려하게 나타낸 수월관음도의 걸작이다. 14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비단 위에 그렸으며 전체 크기는 172cm×63cm, 화면 크기는 91cm×43cm이다. 전체적으로 박락과 훼손이 진행되었으나,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등 화면의 중요한 부분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가치가 높습니다.


이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의 기증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일본에 있던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인 수월관음도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민관에서 펼치고 있는 국외문화재 환수운동의 중요한 성과로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그 환수가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기업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나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온 국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무엇보다 깊은 뜻이 있다. 기업이 사회로부터 창출한 이윤을 사회에 되돌려준다는 기업가 정신을 실천한 모범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韓氏아저씨블로그)


▶ 고려불화 걸작 ‘수월관음도’ 국립박물관 품으로 한겨례 2016.10.17


보관할 때 함에 넣지 않고 말아 외부에 노출된 상태로 간수했기에 바스러질 정도로 보관상태가 좋지않은데 빨리 복구가 되길 기대합니다.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천수천안(千手千眼)관음도


천수천안(千手千眼)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93.8 x 51.2cm 삼성미술관리움


이 작품은 변화관음(變化觀音)을 그린 것으로 고려불화 가운데 몇 점 안되는 예이다. 십일면관음보살, 천수관음보살 등 변화관음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인도에서 성립되었으며, 재난에서 벗어나는 현세이익과 극락에 왕생하는 내세구복을 보장하는 보살로 그에 대한 신앙이 중국 당대이래 성행했다고 한다. [천수천안경千手千眼經]에 의하면 천수천안관음은 천 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 즉 일체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한 보살이라고 한다. 이는 관음보살의 자비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화면 가운데에는 정면을 향해 관음보살이 결가부좌하였고, 머리 위쪽에는 부처가 둥근 원 안에 그려져 있으며, 관음보살 우측 아래 왼쪽에는 선재동자가 위치하고 있다. 관음보살의 윤곽선은 먹선을 따라 주색으로 엷게 바림을 하였다. 치마는 주색으로 전면을 칠하고, 그 위에 금니로 화문을 그려 넣었다. 연화좌는 녹청과 주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세부는 금니로 묘사하였다.


이 그림은 비록 화면이 작은 편이고 변색이 있기는 하지만 고려 유일의 천수천안관음도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거의 같은 도상의 그림이 조도지(淨土寺)에 전하고 있어 적어도 조선시대 전반까지는 천수천안관음도상의 기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배영일)





관음지장보살병립(觀音地藏竝立)도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한 국보급 고려시대 불화가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은 지난 2008년 3월 5일 “일본 나고야 지역에서 14세기 중ㆍ후반 무렵 고려불화인 ‘관음ㆍ지장보살 병립도(竝立圖)’를 발견했다”면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학계에 안 알려졌지만 작품의 가치는 국보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우택 관장에 따르면 ‘관음ㆍ지장보살 병립도’는 오른쪽에 관음보살, 왼쪽에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화폭 상단에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짐작되는 여래상 세 구를 그려 넣었다. 관음보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늘어뜨린 하얀 옷(白衣)을 입고 있으며, 지장보살은 두건과 가사가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금니의 적절한 사용, 중심문양이 연화당초원문인 점, 관음보살의 백의 전면에도 금니로 상하좌우대칭의 연화원문을 그려 넣은 점 등을 감안할 때 고려시대인 14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두 보살을 같은 화면에 배치한 이 작품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고려 말~조선 초에 우리나라에서만 그려진 고려불화만의 독특한 양식을 담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 동안 일본으로 반출돼 현지 사찰인 서복사와 남법화사에 소장된 있는 두 작품만 알려져 있고 이번이 세 번째다. (국보급 고려불화 관음ㆍ지장보살 병립도 발견 - 불교신문 2008.3.6)




천수관음의 지물 중 금강령과 금강저



왼쪽과 오른쪽 위는 천수관음이 손에 든 여러 지물 중 금강령과 금강저입니다. 

금강저는 벼락을 형상화한 제석천의 무기이며 금강령은 종과 금강저를 결합한 형태입니다.

오른쪽 아래는 관음보살경상(고려)인데 경상은 동경의 면에 선각, 또는 묵서 등으로 존상(尊像)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나라 경상은 주로 원형이나 방형 등의 동판에 관음상, 보탑, 사천왕 등을 많이 새겨 넣었다. 

이러한 경상은 일상생활용구가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와 상징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 조선시대의 수월관음도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함안군부인 윤씨 발원 (咸安郡夫人 尹氏 發願)  시대 : 조선 전기(1392 ~ 1500년경)

15세기 말.  비단바탕에 채색. 170.9㎝ X 90.0㎝


관음보살은 재난과 질병을 막아주는 보살로서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하여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와 수월관음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수월관음도는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라고도 한다.


구도라든가 형태, 필선(筆線) 등에서 희귀한 조선시대 양류관음도의 기준작품이 되는 걸작품으로서 흔히 주야신도(主夜信圖)로 알려져 있다. 자색(紫色)으로 물들인 비단 바탕에 섬세하고 활달한 필선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채색한 금선묘(金線描)로서 배치구도가 안정감은 있으나 형태는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암굴 속에 앉은 관음보살이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른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은 장면을 그린 이 양류관음도의 오른쪽 절벽에는 버들개지를 꽂은 정병(淨甁)이 보인다.


특히, 관음보살의 머리 윗부분에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따로 강조하여 그려 모신 대신, 보관에 화불(化佛)을 그리지 않고 있어 고려시대 양류관음과 비교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조선시대 양류관음도의 보관에 화불이 표현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하겠다.


화기에는 단지 ‘공덕주함안군부인윤씨(功德主咸安郡夫人尹氏)’라고 씌어 있는데, 공덕주는 함안 본관의 윤씨이며, 위계는 군부인으로 해석되며, 이동주(李東洲) 교수는 이 양식과 비교하여 태종의 손자인 왕산군(王山君, 1429∼1490)의 부인인 함안윤씨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당시는 세조 등 왕실종친이 불교를 신봉해서 원각사를 창건하는 등 숭불정책을 의욕적으로 실시하였기 때문에 이런 배경과 함께 15세기 말경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왕실발원의 이 그림은 고려불화의 화려한 귀족적 분위기를 이어받은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서 조선시대 양류관음도연구에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좌측 하단에는 선재동자를 배치하는데, 얼굴이 통통하고 복스러운 여인을 연상시키며, 목에는 불상에서 빠짐없이 보이는 삼도가 뚜렸하고, 특히 머리광배를 표현하여 매우 특이하다. 혹시 공덕주인 함안군부인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봅니다.


[출처] 사이후쿠지(西福寺).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작성자 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