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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자클린의 눈물

 

 

"Jacqueline's Tears" performed by Cellist "Werner Thomas" with "Münchener Kammer-Orchestra",

dedicated to "Jacqueline du Pre"

 

작곡 :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본명: 야콥 레위 에베르스트(Jacob Levy Eberst) 
제목 : 자클린느의 눈물(Les Larmes de Jacqueline) or 자클린의 눈물(Jacqueline's Tears)     

 

 

Jacques Offenbach

▶ 자크 오펜바흐(본명은 야콥 에베르스트). 

본명인 "야콥 레위 에베르스트"보다 별명인 "자크 오펜바흐"로 더 유명하다. 

 

예명의 성(姓/family name)이자 아호(雅號)인 "오펜바흐"는, 본래 신성로마제국(962~1806)의 이센부르크 백작 속령이었으나 제국의 해체 후 독일 중부 지역에 성립된 "헤센 대공국[헤센다름슈타트(1806~1918) : 신성로마제국을 붕괴시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가 방백령에서 대공국으로 격상시킨 現 독일의 헤센 州]"으로 편입된 하항(河港) 도시 "오펜바흐 암 마인(Offenbach am Main)"에서 따온 것이다. 오펜바흐의 부친인 아이작 유다 에베르스트(Issac Juda Eberst)의 출신지가 오펜바흐암마인이었기 때문이다. 

 

야콥 에베르스트는 원래 독일 퀼른 태생의 유대인이었지만, 어렸을 때 프랑스로 이주하여 줄곧 파리(Paris)에서 살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프랑스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10대 청소년기에 첼리스트로 음악을 처음 시작해 샹송 작곡가로 이름을 조금씩 알렸고, 30대에 들어서며 오페라타(operetta : 경가극) 작곡가로 명성이 높아졌다.

 

 

Thomas-Mifune,Werner

'자클린의 눈물' 은 호프만의 이야기, 천국과 지옥 등의 작품으로 '프랑스 오페레타의 창시자' 로 불리우는 독일 태생 프랑스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인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의 미발표 악보였습니다. (오페레타 : 가벼운 희극에 통속적인 노래나 춤을 곁들인 오락성이 짙은 음악극)

 

그런데 이 곡이 공교롭게도 100년이 지난 뒤 독일의 체리스트 토마스 베르너(Thomas-Mifune, Werner)에 의해 발굴되어 '자클린의 눈물' 로 이름 붙여져 직접 연주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르너는 독일에서 첼리스트로 지금도 활동을 하는 음악가로 내한 공연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베르너는 왜 오펜바흐의 곡에 '자클린의 눈물' 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당시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기리기 위해 베르너 토마스는 이곡의 제목을 「자클린의 눈물 Jacqueline's Tears」라 지었다고 합니다.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는 어릴 때부터 첼로를 배워 16세에 런던에서 데뷔한 확실한 테크닉과 풍부한 음악성, 왕성한 창조력을 지닌 천재 첼로 주자였습니다. 1965년 BBC 교향악단과의 미국 연주여행 때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여 선풍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67년 22세에 피아니스트이자 젊은 지휘자였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만나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해 슈만과 클라라 이후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가의 결합으로 축복을 받았으며 같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바렌보임과 행복했을때의 자클린 뒤 프레

 

그러나 71년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의 증상이 나타나 73년부터 연주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첼리스트의 삶을 무너뜨린 병마에 시달리면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클린 뒤 프레의 곁을 남편인 바렌보임은 비정하게도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위해 떠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하며 주변에 자주 묻기도 했던 그녀는 1987년 42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병이 심했을 때 그녀를 떠났던 바렌보임은 그녀가 죽은 후 무덤도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렌보임과 엘레나

뒤 프레의 남편이었던 바렌보임은 아내가 불치병과 한창 싸우고 있던 1980년대 초부터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엘레나 드미트리예브나 바쉬키로바(Elena Dmitrievna Bashkirova)와 바람을 펴 두 살림을 차리면서 두 아들까지 낳았고, 결국 뒤 프레에게 이혼까지 요구했다(뒤 프레는 1987년 10월에 죽을 때까지 이혼을 거부했음). 

 

그 후 바렌보임은 병사한 조강지처의 임종에도 장례에도 무덤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뒤 프레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1988년에 바쉬키로바와 재혼했다. 희대의 간통남... 그래서 지금까지도 바렌보임에게는 그의 마에스트로적 재능, 전세계적 명성과는 별개로 항상 "기회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Musty Room)

 

 

 

아르헨티나 출생 이스라엘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바렌보임은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현대 음악계의 지도적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1984년 파리관현악단과 함께 내한하여 지휘하기도 하였습니다. 자클린 뒤 프레와 바렌보임은 한 때 음악의 동반자로서 많은 첼로의 명곡을 연주하였는데 대부분 음반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자클린의 눈물' 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매우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 TV 드라마 '옥이 이모' 의 배경 음악으로 나왔으며, 2008년 유명한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에서는 입양아로서 입지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라차드 용재 오닐이 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슬픈 음악에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0년 전의 음악가에 의해 만들어진 곡이 어느 불행한 천재 첼리스트를 위해 다른 음악가에 의해 헌사된 이 '자클린의 눈물' 은 그 자체가 음악의 역사인 동시에 앞의 김현승 시인의 시처럼 하느님에 의해 슬픔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열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낙엽이 찬바람에 거리를 뒹구는 늦은 가을날 듣기에 좋은 곡입니다. '자클린의 눈물' 은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 연주가 유명한데 ... (출처: Wikitree)

 

▶ 이 곡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Musty Room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1942~)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의 러시아계 유대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자클린 뒤 프레의 남편이었다. 바렌보임은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9살 때 이탈리아 시에나의 키지아나 음악원에서 처음으로 지휘를 배웠다. 여담이긴 한데, 이때 바렌보임과 같이 수학한 동문이 주빈 메타와 클라우디오 아바도다. 

 

오랜 친구인 아바도와는 먼 훗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자리를 두고 지속적으로 경쟁했지만 항상 승자는 아바도였고 바렌보임은 객원 지휘자로 만족해야만 했다(공개적으로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음). 

 

어쨌든 유년기부터 피아노 연주 실력이 워낙 뛰어났던 그에게 20세기 초중반의 세계적 마에스트로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유복한 가정 환경, 피아노 고수였던 부모님에게 받은 유무형의 각종 지원과 본인의 천부적 재능, 그리고 피나는 노력이 합쳐져 이미 청소년기에 유명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게 된 바렌보임은 20대 중반이던 1966년에 공식적으로 지휘자로서의 경력 또한 시작하게 된다. 

 

바로 이때 만나 6개월이라는 다소 짧은 연애를 한 끝에 이듬해 초스피드로 결혼을 한 여자가 바로 슈퍼스타 첼리스트였던 "영국의 붉은 장미" 자클린 뒤 프레다. (Musty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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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프레는 병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앉아 보내던 시절 이렇게 고백했다.

 

“첼로는 외로운 악기다. 다른 악기나 지휘자가 있는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첼로로 음악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음악적으로 강한 유대를 가진 보조자가 필요하다. 

나는 운이 좋아 다니엘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거의 다 음반에 담을 수 있었다.”

 

그의 음반으로는 엘가의 첼로협주곡(EMI)이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며, 코바셰비치와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EMI)도 수작이다. 그녀의 미소와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누구라도 자클린느 뒤 프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뒤 프레의 전기 작가 캐롤 이스턴은 

읽기도 말하기도 힘들게 된 말년의 뒤 프레는 자신이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들을 때마다 몸이 찟겨 나가는 기분이 들어요.……눈물 조각처럼" 

 

그러곤 고개를 떨구고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출처: 서영림의 법과 문학)

 

 

 

Edward Elgar's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 Jacqueline du Pre & Daniel Barenboim

 

엘가의 마지막 걸작인 이 곡은 솔로 첼로연주자들에게는 기본 레퍼토리곡이다. 제1차 세계대전하에서 작곡된 이 곡은 

서정적이며 열정적이었던 그의 초기 바이올린 협주곡과는 달리 이 첼로협주곡은 전반적으로 명상적이고 애수적이다.

이곡의 초연은 엘가와 연주자들의 충분한 리허설 시간 부족으로 인하여 대실패였다고 한다. 

그리고 Jacqueline du Pré 의 녹음이 이루어진 60년대 이후 일반에게 알려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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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 뒤 프레의 이야기

 

 

 

이 곡의 발굴자인 베르너 토마스의 연주

 
Les Larmes de Jacqueline (Jacqueline's Tears) Op.76 No.2 / Harmonies du soir Op.68 composed by Jacques Offenbach (1819-1880) and dedicated to Arsène Houssaye. 
The performance is by Werner Thomas with Münchener Kammerorchester and it's dedicated to Jacqueline Du Pre.

 

 

Offenbach's 'Les Larmes de Jacqueline' by Mischa Maisky

 

 

 

장 한나와 Sergio Tiempo(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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