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이 글은 이토렌트의 회원께서 올리신 글인데 내용이 너무 좋아 제 블로그에 박제 해놓습니다.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
마추 픽추(machu picchu)는 페루에 있는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이며, 1911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역사학자인 하이럼 빙엄(1875년-1965년)이 우르밤바 계곡에서 발견하였다. 마추 픽추는 원주민말로 '나이든 봉우리'를 뜻하는데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 도시'라는 수식어가 딸린다. 페루 우루밤바(Urubamba) 계곡에 연한 높은 산의 산턱(해발 약 2,057m)에 위치하며 그 유적은 3m씩 오르는 계단식 밭이 40단이 있어서, 3,000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적의 면적은 약 13k㎡로, 돌로 지어진 건물의 총 개수는 약 200호 정도 된다.
1 - 서글픈 바람의 노래
안데스 음악
남미 대륙의 서부를 종단하면서 북으로는 카리브해까지, 남쪽으로는 남극 바다와 닿아있는 안데스 산맥. 안데스 음악은 이 고원의 척박한 땅에 문명을 일구었던 인디오들의 음악이다.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이 안데스 국가에 속한다.
한 나라나 민족, 지역, 또는 하나의 문화가 지켜온 음악 전통이 담겨 있는 월드 뮤직의 대부분은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그 정서적 특징이 만들어진다. 특히 다른 문화에게 정복당한 역사를 경험한 지역의 음악은 그 ‘한(恨)의 정서’로 인해 음악적 감동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신대륙 발견의 선봉에 섰던 스페인에게 찬란했던 잉카 문명을 정복당하고 고난의 역사를 살아야만 했던 인디오들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는 안데스 음악 역시 그중의 하나로 세계 음악팬들에게 감동을 전해왔다.
16세기, 황금을 찾아 나선 스페인 인들이 처음 남미 땅을 밟은 이후 남미 인디오의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되기 시작했다. 안데스 고원에 꽃피웠던 잉카의 찬란한 문화는 무지한 서구인들의 폭력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역사의 침묵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제국주의의 폭력과 지배가 지속되는 동안 남미 인디오들의 80% 인구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는 뿌리깊은 고통과 슬픔의 한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이 흘렀고. 1970년 사이먼과 가펑클이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가 안데스 인디오 음악임을 알린 후, 안데스의 음악은 비로소 부활하여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지난 세월의 깊은 회한을 머금어 애절하고, 비장하며, 우수에 가득 차있다. 빠르고, 경쾌한 춤곡들에서 조차도 피해갈 수 없는 ‘한의 정서’가 느껴지는 이유도 역시, 안데스 인디오들의 고통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Leo Rojas - El Condor Pasa
안데스 음악 속에 담긴 잉카의 번영과 몰락
‘하늘까지 이어지는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안데스에는 잉카 문명 이전에도 수 천 년에 이르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었다. 기원전 페루의 고지대에 이루어졌던 차빈(Chavin) 문명이나 기하학적인 그림의 신비로움으로 유명한 나스카(Nazca) 문명 등이 안데스 지역의 역사 속에 존재했으며, 잉카(Inca) 문명은 12세기 경 현재의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데스의 험준한 고원 지대에 꽃피웠던 이 문명들은 다른 지역의 문명과 마찬가지로 제국과 도시를 건설하고 여러 가지 신화를 남기기도 했고, 그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민속 음악의 특징들이 안데스 음악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안데스 지역은 잉카문명 (Inca는 ‘케추아어’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이 발생한 곳으로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북부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등의 국경을 접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유사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Andes : 하늘 까지 계속 되는 밭이라는 뜻.
Inca : 태양의 아들 이라는 뜻을 지님.
안데스 族 : 안데스 산맥 주변에 사는 인디언(몽골리안) 자료상 50여개가 넘는 종족
잉카 族 : 따완띤슈유(잉카 제국 왕국의 족 케추아 族) 후에 아이마라 족도 포함.
안데스 음악의 배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잉카 문명이다. 안데스 지역에 이루어진 마지막 원주민 문명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안데스 음악의 근간을 바로 잉카 제국의 번영과 몰락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잉카 문명이 이루어졌던 곳은 페루와 볼리비아, 그리고 에콰도르 정도이다. 잉카 제국의 옛 수도인 쿠스코(Cusco)는 인구가 이십만이 넘는 큰 도시였고, 15세기경부터는 본격적인 정복 사업을 시작해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 지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가파른 고원에 계단식 밭을 일구고 살았던 인디오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대지를 위대한 어머니로 여겨 파차마마(Pachamama)라는 대지의 여신을 섬기며 살았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특정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음악은 가장 중요한 감성 표현의 도구였고,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기록의 수단이기도 했다.
원래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어서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았다고 하며, 씨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공동경작을 했기에 음악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안데스 인디오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이 담긴 음악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픈 정서를 보듬게 된다.
영토의 확장과 함께 번성을 누리던 잉카 문명은 스페인으로부터 온 이방인에 의해 허무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스페인의 군인이자 남미 대륙 원정의 선봉에 있었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라는 인물은 이 지역에 황금이 가득하다는 말을 듣고 1532년 200여 명에 불과한 군대를 이끌고 ‘쿠스코’로 들어갔다. 당시 잉카 제국을 다스리던 왕은 아타왈파(Atahualpa)였다.
피사로의 계략과 인디오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유럽의 무기는 근위병 수천 명을 순식간에 제압했고, 사로잡힌 아타왈파 왕은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피사로에게 몸값으로 주었지만 끝내 살해당하고 말았다. 스페인이 안데스 사람들의 영혼에 준 지울 수 없는 상처는 그렇게 어이없이 시작되었다.
이어 정복자들은 꼭두각시 왕을 내세워 민심을 수습하려 했지만, 잉카의 혈통임을 자각한 그 왕은 안데스 깊숙이 도주해 스페인에 대항했다. 스페인의 횡포에 시달리던 많은 잉카인들이 힘을 모았지만, 물리적으로 스페인의 군대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삭사이와망(Saqsaywaman)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수많은 잉카인의 피로 대지를 물들이며 ‘쿠스코’를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피사로가 황금을 찾아 잉카의 대지에 들어 온지 40년이 되는 1572년, 마지막 왕인 투팍 아마루(Tupac Amaru)가 처형당하면서 제국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
James Last & Georghe Zamfir - Einsamer Hirte 1977
안데스 음악에 배어 있는 한 맺힌 슬픔은 이때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만과 야욕에 찬 스페인은 수많은 인디오들을 광산으로 몰았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데려온 흑인들까지 동원해 약탈해 간 금과 은, 그리고 천연자원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을 것이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일부 안데스 지역에는 강제 노동의 역사에 이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탄광의 노동자로 일하는 인디오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복자들은 또한 잉카의 후예들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종용했고, 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안데스 사람들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음악을 ‘악마의 음악’으로 규정하고 그 전통을 지우려 했다. 음악가들이 탄압을 받고, 페루의 한 지역에서는 모든 전통악기들을 수거해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노골적인 침략과 수탈로 이어지는 뼈아픈 역사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인디오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들만이 지녔던 문화의 명맥을 유지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광산의 어두운 지하에 그들이 믿었던 토속 신앙의 신을 모셔두었고, 안데스 대자연의 정기가 담긴 음악 역시 잊지 않았다. 오히려 스페인으로부터 들어 온 서구의 음악어법을 자신들의 음악 속에 포용하고, 기타와 하프를 차랑고(charango)와 아르파(arpa)라는 악기로 개량해 안데스의 정서를 불어넣기도 했다.
굴곡진 역사 탓에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안데스 음악들은 잉카 시대 음악의 원형과는 달리 서구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데스 고원의 바람소리를 닮은 전통악기들의 합주를 통해 피워 올리는 안데스 음악 고유의 향취 속에는 자연과 호흡하며 살았던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인디오들의 질박한 감성이 분명히 담겨 있다.
또한 화려했던 잉카문명의 옛 영광을 반추하며 자신들이 겪었던 슬픈 역사를 한 서린 감성으로 표현하는 음악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서글픈 한을 쌓으며 살아남은 잉카인들의 음악은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이 출몰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속에서 들풀처럼 일어서는 저항정신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 민속음악의 발굴에 평생을 바쳤던 아르헨티나의 아타왈파 유팡키(Atahualpa Yupanqui)와 칠레 민속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a)의 음악 속에 안데스 인디오들의 숨결이 담겨 있었고, 노래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던 아르헨티나 음악의 대모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와 음악으로 잘못된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지녔던 칠레의 저항 시인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음악 속에도 안데스의 음악 전통이 그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이들의 노래는 음악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던 누에바 칸씨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이라는 노래 운동으로 확산되며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안데스 음악은 전통악기들의 선율과 깊은 울림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안데스 인디오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음악이다. 안데스 고원 대자연 속에서의 삶, 유럽 문화와 대면하며 겪었던 아픈 역사,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팍팍한 현실까지도.
Simon & Garfunkel - El Condor Pasa
달팽이보다는 참새가 되겠어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될거야. 음~
못보다는 망치가 되겠어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될거야. 음~
지금은 멀리 날아가버린 한 마리 백조처럼 멀리 떠나고 싶어
하지만 사람은 땅에 얽매어 있어 떠나지 못하지.
그는 세상을 향해 가장 슬픈 소리를 외친다네 가장 슬픈 소리를.
거리보다는 숲이 되겠어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될거야. 음~
발밑의 땅을 느끼겠어.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될거야. 음~
"콘도르(condor)"라는 말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인 잉카인들 사이에서는"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콘도르 새 역시 잉카인들에 의해 신성시 되어온 새로서 그들의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콘도르는 잉카인들의 삶과 종교에서 떼 놓을 수 없는 새로 알려져 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한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의 원곡은 스페인의 200년 폭정에 분노하여 페루에서 1780년에 일어났던 대규모 농민반란의 중심인물인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의 이야기를 테마로,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음악으로 마추픽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잉카인들의 슬픔과 콘도르칸키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노래이다. 농민혁명을 일으킨 콘도르칸키는 1년후인 1781년 체포되어 처형당하지만, 스페인 억압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을 상징하는 이름으로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가지며,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그들의 전설처럼 그도 역시 죽어서 콘도르가 되었다고 잉카인의 후예는 믿고 있다.
이 곡은 Simon and Garfunkel 이 불러 더욱 유명해 졌지만,곡 자체는 18세기 부터 내려오는 페루 민속 음악을 1913 년 페루 작곡자 다이얼 알로미아 노블레스가 악보에 옮겼다고 한다. 본래는 가사가 없었는데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말인 케츄아어(안데스 인디언어)로 옮긴 것으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남성 뚜엣 사이먼과 카펑클이 1970년에 발표하여 대 힛트한 " El Condor Pasa"의 제목을 풀이하면 라틴의 "EL"은 영의 The와 같으며,"condor"는 큰 독수리의 일종이며, "Pasa"는 영어의 Pass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곡은 사이먼 앤 가펑글이 불러 더욱 유명해 졌지만 곡자체는 18세기 부터 내려오는 페루 민속 음악을 1913년 페루 작곡자 다이얼 알로미아 노블레스가 악보에 옮겼다고 한다. 본래는 가사가 없었는데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말을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Oh majestic condor of the andes
take me to my home up in the andes, condor condor
I want to go back to my dearest place and want to live
with my inca brothers that"s what I missed the most, condor condor
Wait for me in inca at the main plaza so that together
we can walk up to machupicchu and huaynapicchu.
오 안데스의 위엄있는 콘도르여
나를 저 위 안데스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콘도르여 콘도르여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곳으로 돌아가
내 잉카형제들과 함께 살고 싶다오.
그것이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오.
콘도르여 콘도르여.
형제들아 잉카(꾸스코)의 중앙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우리 함께 마츄픽추와 와이나픽츄까지 걸어 올라갈수 있도록
안데스 콘도르
"무엇에도 얽메이지 않은 자유"라는 뜻의 새이름으로 잉카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로 그들의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다시 태어 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남미의 큰 독수리 ' 콘도르 ' 는 잉카인들에 의해 신성시 되어온 안데스 산맥의 바위산에 서식하는 지구상에 가장 큰 맹금류의 텃새(permanent resident) 입니다. 잉카인들은 그들의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고 믿고 있기에 삶과 종교적인 상징성을 가진 새이기도 합니다.
Daniel Alomia Robles - Himno al Sol 태양에 바치는 노래
엘콘도르 빠사와 잉카리 신화
잉카가 대제국으로 존재했던 기간은 1세기 남짓한데 1430년대까지는 꾸스꼬(Cusco)계곡을 통치하던 지방왕국에 불과했지만 계속된 정복사업으로 안데스 지역의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1532년 말 황금을 찾아서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 프란시스코 삐사로에 의해 잉카제국의 마지막 왕인 아따우알빠 왕이 화형당함으로서 잉카제국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식민지 건설 이후 200여 년이 흐른 1700년 중엽, 스페인 학정에 대한 반란이 일어난다. 그 주모자인 인디오와 스페인 혼혈인 호세 가브리엘 꼰도르깐끼는 스스로를 "뚜빡 아마루 2세(Tupac Amaru II)"라 칭하며 잉카제국의 부활을 시도하다가 1781년 나이 39살에 스페인군에 사로 잡혀 총살당한 후 사지가 찢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인디오들은 그를 잉까리(Inkarri-태양신의 아들)이라 불렀다.
비록 잉까리가 참수되어 그 머리가 꾸스코에 걸렸지만 잉카인들은 잉까리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는다. 그의 몸은 다시금 땅밑으로 자라고 있고 완벽한 몸을 갖추게 될 때 다시 돌아와 최후의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죽어 콘돌(Condor)로 환생해 안데스 창공을 날으며 원주민 인디오들을 보호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l Condor Pasa>는 바로 이러한 잉카 메시아를 기다리는 잉카인들의 염원을 담은 전설에서 비롯된 한서린 음악인 것이다.
이 전설은 인류학자이며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 로브레스가 잉카의 오래된 민속음악을 채집․정리하면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1897년 117살의 잉카 노인에게 옛 잉카인들이 연주했던 "Himno al sol" 즉 "태양에 바치는 노래"와 "엘 콘돌 빠사(El Condor Pasa)"의 원곡을 채록한다.
El Condor Pasa - Los Incas
오 위대한 콘도르여, 하늘의 주재자여
나를 집으로 보내주게나, 안데스 산 높은 곳으로
오 위대한 콘도르여, 내 고향으로 가고 싶다네
나의 잉카형제들과 함께 하려고
그들은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네
오 위대한 콘도르여
끄스꼬에서 날 기다리게나, 대광장에서 말일세
마추피추산정에서, 와이나피추 산정에서
우리 함께 산보를 할 수 있을 테지
안데스 음악의 존재방식
어느 나라에서든지 민속음악(Folk music)은 오랜 시간에 결쳐 외부의 음악이나 악기의 유입과 동화과정 그리고 토착화라는 변용과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그 지역만의 특성을 지닌 현대화된 대중음악(Contemporary popular music)으로 탈바꿈하기 마련이다. 흔히 포클로레(Folklore)라고 불리는 안데스 인디오 음악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스페인은 안데스 인디오들을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자신들의 음악을 전해주었다. 안데스 음악은 스페인의 문화침식을 견디지 못하고 거의 사라진 아즈텍 음악과는 달리, 스페인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생명력과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했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라틴아메리카에는 원래 존재하지 않던 류트, 하프, 기타와 같은 악기가 들어오자 이를 변형시켜 차랑고(Charango)를 만들어 냈고 소형하프는 알파안디노(안데스하프)로 탄생시켰다. 이렇게 안데스 인디오들의 손을 거친 유럽의 악기들은 그 음색이나 분위기가 유럽의 것이 아닌 안데스의 것으로 철저하게 변화하였다.
<Traditional Music of the Peru>시리즈를 통해 안데스의 다양한 음악양식을 채집해 정리한 라울 로메로(Raul Romero)는 안데스의 인디오 전통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전통음악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인디오들의 도시 이주가 안데스음악의 개혁과 부활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메스티소(인디오와 유럽인의 혼혈)의 존재와 스페인어와 께추아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언어 구사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있다.
안데스 음악의 중심지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꾸스코(Cusco-배꼽, 즉 중심이라는 뜻)이며 칠레, 에콰도르,페루,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북부의 다섯 나라가 잉카음악 문화권 안에 속한다.드넓은 잉카제국의 존재는 안데스 음악이 안데스 산맥을 넘어서 확산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안데스 음악은 원시적인 사운드와 특이한 언어 때문에 금방 구별이 가능하다. 현재 6백만명이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께추아어(Quechua)와 아이마라어(Aymara)가 스페인어를 비롯한 다른 인디오 언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안데스 음악은 ‘음악은 한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을 반영하고 음계와 악기 조율법 등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표현한다’는 음악현상학의 이론에 부합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안데스에서 사회구조의 기본단위는 아이유(ayllu)라고 불리는 가족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잉카에서 토지는 국가소유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아이유를 단위로 하여 토지를 분배하였고 조공을 받았다. 아이유는 공동 토지를 경작하고 공동사업을 했는데 생산의 소득은 잉카와 제사장,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분배되었다.
안데스 음악은 이러한 공동체의 행사와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했으며, 분배와 상호 독립을 상징하는 수단이었다. 한 개인이 연주하는 악기로 공동체의 조직과 가치가 반영되었다. 안데스 사람들은 그 출생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동질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역마다 옷감의 디자인, 옷을 입는 방법, 그리고 모자를 쓰는 방법에 이르기 까지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음악에 있어서도 마을 마다 악기를 만드는 방법과 음을 조율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또한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음계를 사용하는 것과 다른 가창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축제에서 안데스의 제식과 대상이 되는 것은 ‘땅의 어머니”인 파차마(Pachama)로 코카잎과 건조감자 그리고 치차옥수수술을 파차마에게 바치며 풍요로운 땅과 풍년을 기원했다. 안데스 사람들은 파차마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농작물과 가축들이 죽게 될 것이라 믿었다. 또 태양신인 인띠라이미(Inti Raymi)와 임신과 출산을 주관하는 달의 신인 끼아(Quilla)와 바람의 신,비의 신들을 숭배했다.
안데스에는 아주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감자를 재배할 때 부르는 노래, 보리수확의 노래, 밀 타작의 노래, 가축 키울때의 노래, 그리고 집 지을때의 노래등 많은 노래들이 존재한다. 장례식과 여러 의식을 위한 노래도 불러지고 있다. 안데스 음악에서는 5음계(라도레미솔)가 사용되며 안데스의 대자연과 인간의 정감 어린 교류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데스 음악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사라져가는 잉카문화에 대한 향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614년 페루의 수도 리마(Lima) 대교구 카톨릭 승정은 "악마의 장난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께나를 포함한 모든 인디오 악기들을 불태워버리라고 명했다. 그리고 이 악기를 만드는 자와 연주자 모두를 처형했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잉카의 후손들은 그들의 음악을 목숨을 건채로 보존해왔다. 서구인들이 남미 인디오에게 미처 빼앗지 못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옥수수와 피리, 그리고 들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인디오들이 오늘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은 그들의 자연친화적인, 높은 정신문화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Basta Corazon no llores - Huayno de Bolivia
안데스 음악의 부활
현대화와 산업화로 인디오의 문화와 음악은 쇠퇴를 거듭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은 안데스 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우리가 방송이나 음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현대화된 안데스 포크음악의 연주 형태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1950년대와 60년대에 펼쳐졌던 여러 정치적 사건들의 영향이 있었다.
특히 1952년 볼리비아에서 광산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여러 집단의 동맹에 의해 일어난 사회혁명과 1959년 페루혁명은 안데스 인디오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긍심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볼리비아의 1952년 혁명으로 볼리비아의 많은 인디오들이 토지를 분배 받고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었다.
볼리비아의 새 정부는 교육부에 민속음악 전담부서를 두고 전통음악에 대한 복원과 발전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전통 음악축제가 활성화되었고, 많은 라디오 방송들은 아이마라어와 께추아어로 방송을 시작했다. 또한 그들의 전통음악을 방송하며 음반으로 녹음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페루에서도 1959년 혁명의 영향으로 스페인 문화의 가치를 거부하고 인디오 문화와 전통을 새롭게 평가하는 작업이 본격화 되었고 이러한 가운데 인디오 음악의 부활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인디오의 문화와 전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는 인디오 농민들의 옷인 판초를 입기 시작했으며 과거 식민 종주국의 오랜 통치속에서 뿌리깊은 유럽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문화로서 라틴아메리카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오의 음악과 문화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안데스음악의 현대적 전승
1960년대 후반의 "새노래 운동"(Nueva Cancion)라는 새로운 흐름이 그들의 민속음악을 새로운 장르로서 발전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독재권력과 암울한 시대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그들의 민속음악 리바이벌은 이상에 대한 동경을 고취하는 가사와 함께 민중을 사로잡는 전형적인 현대적 민속음악의 정착에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운동에 가담한 예술인들의 노래운동인 '새노래 운동'(Nueva Cancion)의 가장 대표적인 음악인은 빅토르 하라(Victor Jarra)이다. 그는 비올레따 빠라(Violeta Parra)의 정신적 계승자가 되어 민속적 전통을 살리면서 1960년대 우디 거슬리나 피트 시거 같은 미국 포크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의 음악의 기초는 안데스 음악이다. 그는 개인적 서정과 민중의 삶에 대한 애환 그리고 사회비판을 뛰어넘어 체제변혁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zamba(삼바), vidala(비달라), huayno(와이뇨) 등의 민속적 리듬에 실어 불렀다.
Los Indios Tabajaras - Maria Elena
안데스 산맥 지방의 민속음악 Folklore(포클로레)는 인디오의 5 음계 2 박자 계통의 안데스 음악위에 화성과 3. 6 박자의 유럽 음악이 가미된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일반적인 음악형태를 가리킨다. Antonio Pantoya, Los Panchos, Los Indios Tabajaras, Los Chacos, Urubamba, Los Trea Diamantes 같은 그룹들에 의해 불리어진 라틴 아메리카의 추억의 Folklore들로 Maria Elena, Luna Liena(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Historia De Orun Amor(사랑의 역사), Quizas Quizas Quizas, La Paloma, Silba Me Amor(피리 부는 연인), Virgines Del Sol(태양의 소녀들)의 아름다운 선율이 생생하게 숨쉬고 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마추피추 산정까지 애수 어린 안데스의 피리, 작고 귀여운 음색이 어린 요정의 영혼처럼 풀풀 새어나오는 Quena(께냐)와 Zampona(삼포냐), Charango(차랑고), Bombo(봄보)들로 구성된 즉흥 연주단은 Huayno(와이노), Cueca(꾸에까), Saya(사야), Yaravi(야라비), Ayarichi(아야리치), Auqui Auqui(아우끼 아우끼) 같은 안데스 특유의 리듬을 인디오의 평원에 흩뿌려 놓았다.
잉카라는 말은 그곳 원주민어로 태양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잉카가 대제국으로 존재했던 기간은 겨우 1세기 남짓한 시간이었다. 1430년대까지 쿠스코 계곡을 통치하던 일개 지방 왕국에 불과했던 잉카는 그후 여러차례의 정복사업 끝에 안데스 지역 전역에 징기스칸의 대원제국과도 같은 거대한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1532년말 황금을 찾아 스페인에서 건너온 정복자 Francisco Pizarro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잉카의 마지막 왕이었던 Atahualpa (아따우알파)가 화형당하고 화려한 영화를 뽐냈던 잉카 문명도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스페인은 잉카 제국의 오랜 터전이었던 페루와 볼리비아 일대를 식민지로 만들고 원주민들에게 포악한 무단 통치를 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이백년이 흐른 18 세기 중엽 스페인 제국의 학정에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1614년 페루의 수도 리마 대교구의 카톨릭 승정은 인디오들의 고유 악기들을 사악한 악마의 도구로 여겨 불태워 없앴고 악기를 만드는 자나 연주하는 사람 모두를 처형시켰다고 한다. 이런 박해속에서도 잉카의 후손들은 그들의 음악을 대대손손 대물림해 왔는데 그들에게 음악이란 생명과 존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로스 잉카스와 ‘El Condor Pasa’
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노래했던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는 세기의 팝 명곡 이전에 잉카 문명 몰락의 서글픈 전설이 담겨 있는 곡이다.
18세기 중엽 잉카의 마지막 왕이었던 투팍 아마루의 후손인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Jose Gabriel Condorcanqui)라는 인물은 자신의 이름을 ‘투팍 아마루 2세’로 바꾸고 스페인의 포악한 식민 통치에 대해 무력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스페인 군대에 붙잡혀 지독한 고문과 함께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El Condor Pasa’는 죽은 그가 안데스를 상징하는 새인 콘도르로 환생해 안데스 창공을 날아다니며 인디오들을 보호한다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린 안데스의 노래다.
‘El Condor Pasa’는 ‘콘도르가 난다’라는 뜻의 제목이며, 인디오들 사이에 전해오던 원래 노래는 콘도르에게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갈망과 향수를 토로하는 노랫말을 지니고 있다. 아픈 역사를 보듬고 살아 온 인디오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이 곡은 1950년대 유럽에서 ‘로스 잉카스(Los Incas)’라는 안데스 음악 그룹에 의해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Bach Bwv1067 Orchestral Suite "Polonaise" / Ton Koopman, Amsterdam Baroque Orchestra
‘El Condor Pasa’를 연주하는 이들의 공연 무대에 감동을 받은 폴 사이먼이 그룹의 도움을 얻어 영어 가사를 붙인 곡으로 발표해 불후의 팝 명곡으로 남게 된 것이다. 주로 케나(quena)의 구슬픈 음색으로 연주되는 주선율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빠른 템포의 변주를 담은 안데스 음악 그룹들의 연주는 Simon & Garfunkel의 노래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감흥과 함께 잉카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더욱 날 선 아픔으로 느낄 수 있다.
안데스 음악의 전설로 회자되는 로스 잉카스는 19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안데스 지역 출신 뮤지션들로 결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안데스 음악이 커다란 화두로 떠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멤버 전원이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로스 차코스(Los Chacos)’ 역시 그 영향으로 생긴 그룹이다. 이들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2번 B단조 BWV 1067] 중 제5곡 ‘Polonaise(폴로네이즈)’를 안데스 음악의 전통으로 연주하며 음악팬들에게 안데스 음악의 인상적인 면모를 각인시켰다.
Los Chacos 로스 차코스
프랑스인 6명으로 구성된 남미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연주그룹이다. 남미인들도 아니면서 남미의 이국적인 토속적인 색체를 하염없이 뿜어내는 이들을 보고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인들의 격찬이 아껴지지 않았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레코드상인 ABC 디스크 대상에도 올랐던 이들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 2 번 B단조 BWV 1067>중 제 5곡 '폴로네이즈'를 로스 차코스가 남미풍의 분위기로 편곡하여 연주한곡으로 원곡까지 유명하게 만든 매우 슬프고 애절하면서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곡이다.
바흐(Bach)는 4곡의 관현악 모음곡(Orchestral suit)를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잘 알려져 있다. 관현악 모음곡 2번은 B♭단조의 곡으로 5곡 폴로네이즈(Polonaise)와 7곡 바디네리(Badienerie)가 플루트 연주자들에 의해서 자주 연주된다. 플루트 독주와 현악 합주로 구성되어 플루트 협주곡과 같은 느낌을 주고, 플루트의 화려한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폴로네이즈는 폴란드의 민속 무곡으로 유럽의 궁정 무도회에서 인기를 끈 춤곡이고, 쇼팽의 피아노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Los Chacos - Polonaise (1974)
쟝 쟈크 게르(리더), 크리스챤 무량 (쟝 자크 게르의 부인으로 노래와 봄보를 담당), 쟝 베사르레(쟝 쟈크 게르와 친구사이 게나를 담당), 앙르 마리게르(쟝 베사르레의 부인 기타 담당) 그리고 클래식을 전공한 다니엘 다르므상(산뽀니아 담당)과 쟝 미셀 게르(쟝 쟈크 게르와 앙르 마리게르의 막내동생 차랑고 담당))으로 구성된 이들은 독특한 분위기와 절묘한 하모니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폴로네이즈는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빠른 원곡에 비하여 매우 슬프고도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분위기의 곡이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70년대 중반 '로스 차코스'외에 '우루밤바' 그리고 '로스 잉카스' 등 유명한 인디오 앙상블이 이 당시 탄생했는데 이들은 거의가 케나(세로연주하는 안데스 피리)를 포함한 피리족의 악기인 '센카 텐카나', '시쿠이라와 얀타라'(팬플루트), '봄보(북)' 그리고 소형 기타인 '차랑고' 등으로 앙상블을 이루고있다.
볼리비아의 힘, 카르카스
원곡이 안데스 음악인 유명한 곡으로 ‘카오마의 람바다’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댄스곡이지만, 원곡은 ‘Llorando se Fue (울면서 그녀는 떠나갔네)’라는 제목의 안데스 명곡이다. 볼리비아의 세계적인 안데스 그룹 카르카스(K’jarkas)가 직접 만들어서 발표했던 곡으로 많은 안데스 그룹들이 리코딩을 남기고 있다.
Los Kjarkas - Llorando se Fue 울면서 그녀는 떠나갔네
한편 페루와 함께 잉카의 중심 지역이었던 볼리비아의 안데스 음악은 다른 안데스 국가의 음악들에 비해 뛰어난 연주력을 바탕으로 강렬한 색채감을 전한다. 카르카스를 비롯해 인티 라이미(Inti Raymi), 루미야흐타(Rumillajta), 하차 마이쿠(Jacha Mallku) 등의 그룹들이 특히 뛰어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중 카르카스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남미를 비롯한 미주 지역은 물론 유럽 전역과 이웃 일본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안데스 그룹으로 손꼽히는 이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그들만의 개성으로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전통악기들의 밀도 높은 합주와 풍성한 멜로디, 그리고 남성미 넘치는 시원스러운 보컬은 카르카스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견고한 바탕이 되었다. 대표곡인 ‘El Amor y la Libertad(사랑과 자유)’와 ‘Llorando Se Fue’ 는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일찍이 로스 잉카스가 유럽에 남미 민속음악에 대한 붐을 일으키며 안데스 음악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카르카스의 음악성은 로스 잉카스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 사실이다. 카르카스의 등장 이후 안데스 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이다.
안데스 인디오들의 말인 ‘케추아어’로 ‘힘’이라는 의미를 지닌 카르카스를 그룹명으로 한 이들은 71년, 곤살로 에르모사 곤살레스(Gonzalo Hermosa Gonzalez)를 중심으로 삼형제가 주축을 이루어 그룹을 시작했다. 92년과 2008년에 나머지 두 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곤살로 에르모사의 아들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을 멤버로 충원해 가면서 40년을 뛰어넘는 음악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Ruminahui - Kusi-Kusi
안데스의 전통 악기
처음에 안데스의 많은 악기들은 흙과 돌, 동물의 뼈,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또한 잉카 시대까지만 해도 관악기와 타악기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라나 고동으로 만든 나팔, 오카리나, 북 등과 함께 지금도 대표적인 악기로 사용되고 있는 관악기인 케나와 시쿠 정도였다. 현재 안데스 음악에 쓰이는 가장 대표적인 악기로는 케나(Quena)와 시쿠(Siku), 차랑고, 봄보 정도를 들 수 있으며, 여기에 기타나 하프를 개량한 아르파(Arpa) 등이 사용된다.
께나(Quena)
남아메리카의 민속악기 중에서 대표적인 악기로써 길이 35cm 정도의 원형의 통에 앞쪽에 6개, 뒤쪽에 1개의 구멍을 뚫은 악기이다. 이 악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는 대나무로써 그 음색은 애처롭고 투명하며 3옥타브의 음역을 가지고 있다 께나와 모양이 똑같으면서 길이가 약간 더 긴것은 께나초(Quenacho)라고 하며 낮고 부드러운 음색을 갖고 있다.
께나나는 안데스의 피리로 많은 곡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안데스를 대표하는 민족 악기다.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로 현재는 목재가 주로 쓰이지만 오랜 옛날에는 동물이나 사람의 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데스의 장례는 주로 풍장(風葬)이었는데, 에콰도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뼈를 깎아 만든 케나를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취주부가 U자 형태로 파여 있는 종적으로 앞면에 여섯 개, 뒷면에 한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나라의 단소나 일본의 사쿠하치와 비교할 만한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만든 사람에 따라, 또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게 표현된다고 한다. 주로 라마를 보살피는 목동들이 만들어 불었다고 전해지는 이 악기는 안데스의 가장 보편적인 악기로 사랑받았으며, 전통 의식과 축제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케나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 다른 모양의 비슷한 악기로 사용되어 왔다. 쓸쓸하면서도 깊은 음색을 지닌 케나는 수 천 년 전부터 대자연과 호흡하며 살아 온 안데스 사람들의 소박한 정서와 애환을 구성진 선율에 담아내는 악기로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뽀니아 (Zamponia). 시쿠(Siku)
시쿠는 케나와 함께 안데스 음악에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관악기로 팬파이프형의 모양이다. 스페인어로 삼포냐(Zampoña)라고 불리기도 하며, 잉카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티티카카 호수 주변 지역에서 비롯된 악기이다. 케나보다 투박한 바람 소리가 더 많이 들어 있어 안데스 음악 속의 여러 소리들 가운데 특별한 매력을 전한다.
잉카제국 이전부터 있었던 수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악기로써 현재에 이르러서는 께나와 나란히 민속 음악의 본고장인 안데스(andes) 지역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악기이다 길이가 다른 대나무 관을 나란히 엮어서 묶은 것으로써 길이가 긴 것은 저음으로 왼쪽에 위치하고 짧은 것은 고음으로 오른쪽에 위치한다고 한다. 음색은 산의 메아리나 바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같은 애수를 띠고 있으며, 인디오 언어로는 시쿠리(Sikuri)라고도 한다
보통 7-8개에 이르는 여러 개의 관을 두 열로 겹쳐 만들고, 관의 머리를 불어서 연주한다. 역시 지역과 음역, 생김새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저역을 연주하는 긴 길이의 시쿠는 겹쳐져 있는 한 쌍의 관 열을 두 개로 나누어 두 사람이 한 음씩 번갈아 연주하는 호켓방식으로 연주한다.
차랑고(Charango)
유럽에서 들어온 현악기를 원주민들이 독자적으로 개량해서 만든 악기로써 예전에는 동물의 등가죽으로 만들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동물보호를 위해 나무로 만들고 있다. 안데스 음악에서는 감초같은 악기로써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리듬악기이며, 음색은 챠랑챠랑 울리는 듯한, 물이 흐르는 듯한 맑은 음색을 가지고 있다.
안데스 음악의 사운드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악기인 차랑고는 스페인에서 전해진 기타를 모방해서 만든 현악기다. 일반적으로 다섯 쌍의 현을 가지고 있으며, 현의 길이가 짧고 울림통의 두께가 얇아서 대단히 선명하고 찰랑거리는 음색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울림통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원래는 안데스에 서식하는 포유류인 아르마딜로(Armadillo)라는 동물의 가죽으로 울림통의 뒷부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악기를 “노래하는 작은 동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케나와 시쿠 등 관악기가 없는 부분의 연주에서 안데스 음악임을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안데스 음악의 감초 같은 악기이다. 주로 리듬을 담당했던 악기지만, 새로운 연주 스타일이 생겨나면서 독주악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차랑고는 잉카의 전통이 담긴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남미 곳곳의 포크 음악에서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영혼을 담아내는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봄보(Bombo)
순수 천연가죽으로 만든 유일한 타악기로써 소나 라마라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악기라고 한다. 음색은 굵고 낮으면서도 튀지 않는 힘찬 소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악기의 소리들을 받쳐주고 감싸주는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는 악기가 되겠다. 지금은 순수하게 악기로만 사용되지만 예전에는 인디오들의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도 사용 되었다고 한다.
봄보는 안데스의 전통 타악기를 대표하는 오래된 북이다. 지름이 큰 편은 아니지만 키가 큰 악기여서 울림이 깊고 소리가 멀리 가는 악기이다. 안데스 지역에 서식하는 라마의 가죽을 씌워서 만들며 안데스 음악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타악기로 손꼽힌다.
봄보 외에도 다양한 타악기들이 사용된다. 봄보보다 크기가 작은 티니아(Tinya)나 카하(Caja) 등의 북이 있고, 동물의 발톱을 연결해 흔들어 소리를 내는 차차스(Chachas)도 안데스의 여러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이다.
챠챠스 (Chachas)
박자를 맞출 때 사용하는 악기로써 야마라는 동물들의 발톱만을 모아 묶어 놓은 것으로 흔들때 발톱끼리 부딪혀서 나는 소리를 이용한 악기이다. 박자나 음악의 전반부에 효과음을 내기 위해서 주로 사용하며, 특히 물 흘러가는 소리를 간접적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하는 악기 이기도 하다.
론다도르 (Rondador)
산뽀니아와 같은 모양으로써 관이 짧고 가는 것이 특징이며 전체 17개의 관을 가지고 있으며 산뽀니아에 비해서 음색이 가늘고 높으며, 안데스 국가 중에서 에콰도르에만 있는 Sanjuanito라는 리듬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악기이다. Sanjuanito라는 리듬은 께나나, 산뽀니아도 없이 오로지 론다도르와 바이얼린이 이끌어가는 전통 리듬곡 이다.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Rain Rain Rain (0) | 2017.07.23 |
---|---|
월드뮤직 (0) | 2017.07.10 |
Miriam Stockley & Eternal (0) | 2015.09.07 |
추억의 나는 가수다 (2011) (0) | 2015.03.29 |
Adios Mujer - 제비 (0) | 2015.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