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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Via Dolorosa



Live performance of "Via Dolorosa" With Sandi Patti And Movie Clips

작사 : BILLY SPRAGUE

Down the Via Dolorosa in Jerusalem that day
The soldiers tried to clear the narrow street
But the crowd pressed in to see
A Man condemned to die on Calvary

He was bleeding from a beating
there were stripes upon His back
And He wore a crown of thorns upon His head
And He bore with every step
The scorn of those who cried out for His death

Down the Via Dolorosa, called "the way of suffering"
Like a lamb came the Messiah Christ the King
But He chose to walk that road out of His love for you and me
Down the Via Dolorosa all the way to Calvary

Por la Via Dolorosa, triste dia en Jerusalem
Los soldados le abrian paso a Jesus
Mas la gente se acercaba Para ver al que llevaba aquella cruz

Por la Via Dolorosa que es la via del dolor
Como oveja vino Christo, Rey, Senor
Y fue El quien quiso ir por su amor por ti y por mi
Por la Via Dolorosa al Calvario y a morir


The blood that would cleanse the souls of all men
Made its way through the heart of Jerusalem

Down the Via Dolorosa called "the way of suffering"
Like a lamb came the Messiah Christ the King
But He chose to walk that road out of His love for you and me
Down the Via Dolorosa all the way to Calvary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를 따라 내려가시던 그날
병사들이 좁은 길을 정리하려고 애썼지요.
하지만 군중들은 갈보리에서 죽을 운명에 처해질
사람을 보려고 서로 밀쳐대고 있었지요

그는 채찍질 당해 피 흘리고
그의 등에는 채찍 자국들이 나 있었지요.
게다가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고
그를 죽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조롱을 참으며
그는 한 걸음씩 내딛고 계셨지요.

"고난의 길"이라 불리는 그 슬픔의 길로
어린 양과 같이 왕되신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오셨지요.
하지만 그는 당신과 나를 위한 사랑때문에 그 길을 걷기로 택하셨지요
슬픔(고난)의 길을 지나 갈보리까지

사람들은 말을 했네, 이젠 모두 끝이라고
더 이상 그를 기대할 수 없다고
자신마저 못 구원한 그는 메시아일 수 없다고

갈보리의 그 길만이 진정 구원의 길인 것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할수 없었지만
너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때문에
주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네, 슬픔(고난)의 길로


모든인간들의 영혼을 깨끗케 하실 그 피는
예루살렘 심장부를 지나 흘러갔지요

"고난의 길"이라 불리는 그 슬픔의 길로
어린 양과 같이 왕되신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오셨지요.
하지만 그는 당신과 나를 위한 사랑때문에 그 길을 걷기로 택하셨지요
슬픔(고난)의 길을 지나 갈보리까지




샌디 패티는 미국 최고의 기독교 음악 가수이다. 1956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음악 감독이었고, 어머니는 교회 피아니스트를 역임한 그야말로 음악가족이었다. 어릴적 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다가 샌디에고에서 크로포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에 뜻을 품고 앤더슨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백그라운드 보컬을 하며 차츰 음악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맑은 음색과 폭 넓은 음역, 글고 풍부한 감정 표현은 성가곡을 부르기 위해 태어난 양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80년대 부터는 인기있는 CCM 보컬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콘서트는 거의 매진 행진이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는 200회 이상의 콘서트를 열었으며 대규모 투어와 높은 캐런티로도 압권이다. 근엄하고 별 재미없는 성가를 편안하고 부드러운 팝 발라드로 노래한 점이 크게 인정 받았으며 세개의 플래티넘 앨범과 다섯개의 골드 앨범과 미국에서 제일 권위있는 CCM 도브상을 서른아홉번이나 수상한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미상은 무려 다섯번 수상했다. (출처 : 여미마의 Sweet Box)






Por la via dolorosa - Images of Film "Passion of the Christ" 20th Century Fox



Via Dolorosa 소개영상 - 지금은 대부분 시장 상인들이 이 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Jesus' Tomb - 예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두 곳 중 한곳으로 Holy Sepulchre교회에 보존되어있다.
Tomb of Jesus Found? - Did archaeologists really discover the tomb of Jesus and his nuclear familiy?




예루살렘의 크리스쳔 구역의 성묘교회로 들어가는 입구





우리나라에서는 이 찬송가를 리메이크 한

김태영의 '혼자만의 사랑'이 있지만 가사는 틀리다.




이젠 너의 모든 것을 지워야겠지 / 더 짙은 어둠의 숲 저 밖으로
지금까지 사는 건 너 있는 추억때문이었지 / 어느새 난 너의 짐이 되어있었던거야
다신 우연히도 만나지 말아 / 가슴에서 죽어갈 끝이 보이지 않았던 그리움


내 지친 이 가슴속을 누가 위로해줄까 / 혼자만의 사랑으로 남은 나
추억은 이쯤에서 접어야만 하는거야 / 아픔은 혼자만의 몫인걸 아픔은....

이젠 모두 지난 강에 떠나 보내야 하는 / 너를 뒤로한 채 돌아선거야
주체할 수 없었던 눈물의 끝을 감추면서 / 지친 이 가슴속을 누가 위로해줄까
혼자만의 사랑으로 남은 나 / 추억은 이쯤에서 접어야만 하는거야
아픔은 혼자만의 몫인 걸, 아픔은....

가슴에서 죽어갈 끝이 보이지 않았던 그리움∼ / 내 지친 이 가슴속을 누가 위로해줄까
혼자만의 사랑으로 남은 나 / 추억은 이쯤에서 접어야만 하는거야
누구의 가슴으로 기대어 살까 / 아픔은 혼자만의 몫인 걸, 아픔은...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기도 하는 ‘십자가의 길’은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으며,

이 중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성묘교회 안에 위치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Via는 길을 Dolorosa는 고난, 슬픔을 의미한다.)





 







라틴어로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혹은 비아크루시스(Via crucis)라고 불리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Antonia 城)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라비아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후 예수를 묻었다는 장소까지를 이르는 길이며, 지금은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성묘교회)가 그 위에 세워져 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으며, 이는 18세기에 확정된 것이다. 이 중 일부는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현재 매주 금요일 순례자들은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지점은 예수가 재판을 받은 본디오 빌라도 재판정으로, 이 곳에서 심문을 받았고, 예수의 십자가형이 확정되었다. 이곳은 헤롯왕(헤로데스)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 성채 내에 있다. 예수 당시의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카에사리아)에 있었으며,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에 자주 일어났던 반(反) 로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선고교회 (Church of Condemnation)가 서 있다. 


제2지점은 로마 군사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도시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했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조롱하였다. 빌라도는 십자가를 메고 나오는 예수를 보고 “자, 이 사람이오(요한복음 19:5)”라고 했다. 


▶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제1처, 제2처 (블로그 글)

Via Dolorosa의 첫 번째 Station과 두 번째 Station

예수님이 매를 맞고 가시관을 썼던 제2처소의 유적지 교회 - Church of the Flagellation-1



제3지점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다.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에 속해있는 작은 교회당에 표시되어 있다. 


제4지점은 예수가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를 만난 곳이다.  


십자가의 길 Ⅳ - 아르메니아 정교 교회


제5지점은 키레네 사람 시몬(Simon of Cyrene)이 예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진 곳이다. 성경에 의하면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 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어었다.(마가복음 15:21)”라고 되어있다. 1895년에 세워진 프란시스칸 교회가 있다. 


제6지점은 성 베로니카(St. Veronica)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다. 성 베로니카가 예수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는데 돌려 받은 손수건에 예수의 초상이 새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그리스 정교회가 1882년에 이 지점에 기념교회를 세웠다. 


제7지점은 기둥에 표시 되어 있으며, 예수가 두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당시에는 성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고 한다(히브리서 13:12~13). 1875년에 이 곳에 두 개의 예배당이 세워졌다. 


제8지점은 예수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8) 라고 말씀하신 곳이다. 


제9지점은 예수가 세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콥틱 교회가 서있다. 


제10지점은 예수의 옷을 벗긴 곳이다(요한복음 19:23~24). 


제11지점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다(누가복음 23:33). 


제12지점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곳이다(마태복음 27:45~51). 


제 13지점은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내려 놓은 지점이다(마태복음 27:59). 


제14지점은 아리마태아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예수를 장사 지낸 곳이다(마태복음 27:60~61).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안에 있다.


(출처 : 두산 백과사전)




4th Station Of The Cross Which Is Richman House On Via Dolorosa In The 19th Century, Israel


 








비아 돌로로사의 맨 마지막 장소인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으며, 

다시 그 무덤에서 부활하신 곳으로 이 자리에 예수님의 사망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다. 

이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던 바로 그 장소에 세워졌다. 성묘교회는 항상 수많은  순례객들로 붐비는 기독교 최고의 성지다.


 




          성묘           매장동굴                       골고다 바위

(노란색 사선 부분은 바위를 깍아낸 후 현재는 건물 내부 공간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성묘교회의 내부는 또한 많은 기독교 종파들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카돌릭, 그리스정교, 곱틱기독교, 시리아정교, 에디오피아정교, 아르메니아정교 등 

많은 종파들이 모여서 각각의 관리구획을 나누어서 사용한다. 

따라서 이곳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의 교파들이 달라 각기표현하는 방법도 조금씩다르다





예수께서 운명한 장소 -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웠던 골고다언덕의 지점.

나사렛예수 유대의 왕이란 패가 아랍어, 라틴어,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그리스정교가 관리한다 해서 많은 등잔으로 장식했다





성묘교회 중앙에 위치해 있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더 정확한 표현은 예수님의 무덤을 덮고 있는 에디큘(aedicule;작은 건물)이다. 





<성묘 교회에 대하여>
마테 27,33–35. 마르 15,22–25. 요한 19,17–24.


성묘교회 터는 2000년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 밖의 '해골산'이었으며 주변에 채석장이 있었다. 이 해골산 일대는 예수님 처형 10년 후인 AD 40년 경 도시를 확장하는 제 3차 예루살렘 성벽 건설을 하면서 예루살렘 성내로 편입되었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 AD117~138 즉위) 때에는 유대인들이 제1차 (AD 67~70)에 이어 다시 제2차의 <바르 코크바>(Bar Kokhba. AD 132~135간) 반란을 일으키자 예루살렘을 철저히 파괴, 진압하였고 예루살렘을 자신의 이름을 따라 'Aelia Capitolina'로 바꾸는 한편 도시를 로마식으로 재건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이 경배하고 있던 이곳을 없애버리기 위해 흙으로 덮어 평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다 자신의 신전을 세웠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웠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AD 2C 초에는 이곳에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이 있었다 한다)

AD 325~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신전을 허물고 덮은 흙을 파내서 교회를 짓도록 명령하였는데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여제는 이곳에 머물며 발굴과 교회 건설을 지휘하면서 이 성묘를 발굴해 내고 또 근처의 지하 동굴에서 예수님을 처형했던 그 십자가를 찾아내기도 했다. 또 교회는 처형장 골고다와 이 무덤에 각각 세우고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는데 무덤은 주변의 바위를 잘라 파내고 현재의 모습대로 교회건물 중앙에 고립되게 만들었다.

AD 614년에는 페르시아 Khosrau II 의 점령군이 이 교회를 파괴하고 십자가를  빼앗아 갔는데 AD 631년에는 비잔틴 황제 Heraclius가 협상 끝에 십자가를 되찼아 왔다. AD 638년 아랍이 재 점령할 때는 이슬람 측이 관용을 보이며 철저히 파괴하지는 않았으나 그후 AD 900 년대 초에는 교회 입구를 모스크로 바꾸어 버렸고 AD 966년 반기독교 폭동 때에는 화재로 돔이 파괴되었다.

AD 1009년 10월에는 칼리프 '알 하킴'Al-Hakim bi-Amr Allah이 성묘교회를 포함 기독교 성지들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AD 1027~1028년 사이 비잔틴 왕국은 새로 등극한 칼리프 Caliph Ali az-Zahir (Al-Hakim'의 아들) 사이의 광범한 협상을 통하여 성지의 재건축을 허용받았고 기독교도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유지됨에 따라 비잔틴 황제 Constantine IX Monomachus(1042~1055)는 성묘교회의 재건축을 시작하였으며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헌금이 크게 뒤따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1077년 Seljuk Turks가 점령하면서 기독교순례자들의 방문을 불허한다고 알려지자 1096부터 1차 십자군원정이 시작되어 1099년에는 성지를 회복하게 되자 대규모의 재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십자군의 성지회복 50년만인 1149년 7월 15일 성묘교회를 재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미완성 부분에 대한 건축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때에 건축된 모습이 현재까지 거의 유지되고 있다.


그후 성묘교회의 오른쪽 출입문이 막히고 오늘까지 유지되게 된 것은 1187년 무슬림에게 재정복 당한 때 부터이다. 십자군은 살라딘 군대에 패했고, 제3차 십자군(1189-1192)은 예루살렘을 재탈환하고 성묘교회를 재건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1192-1195년 협상으로 순례자들은 성묘교회 방문을 허락받았다. 이후에도 다섯 차례의 십자군(1204-1270)이 더 있었지만, 예루살렘을 탈환하지 못했다.

오늘날 성묘교회는 여섯 개의 기독교 교단, 즉 가톨릭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가 관리하고 있다.

(출처 : 자유인 nonthru<2>, <1>  - 성묘교회의 사진이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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